적정수위

ㅈ.희삼





오이카와 토오루는 앞에 앉은 곱상한 남자로 인해 깊은 시름에 잠겼다. 눈가에 눈물점이 있는, 오이카와의 앞에 앉은 곱상한 사내는 그런 오이카와를 마뜩찮게 쳐다보며 담배를 꺼내 물었다. 그에 오이카와는 기겁을 하며 소리쳤다.



"스가쨩, 몸에 안 좋다고 피지 말랬잖아!"

"이제 운동을 하는 것도 아닌데 뭐 어때? 그리고 이거라도 안 피면 내가 스트레스를 받아 몸져 누우실 것 같거든."

"내가 싫댔잖아, 내가!"

"......토할 것 같거든. 여자친구냐? 징그러우니까 적당히 해."

"와, 스가쨩은 어쩜 천사같은 얼굴을 하고 그런 매정한 말을 아무렇지 않게 해?"

"나 요즘 사람 잘 안 때리는데......넌 좀 때려도 될까?"



진지하게 주먹을 쥐고 자신을 향해 상큼하게 웃어보이는 스가와라 코우시가 오이카와는 참 미웠다. 저딴엔 무지하게도 신경이 쓰여 항상 만날 때마다 긴장하곤 했다. 오늘은 어떤 구실을 갖다붙여 어깨에 팔이라도 둘러볼까, 손 잡으면 질색을 하며 내빼진 않을까, 허리에 팔 감으면 남자끼리 징그럽다고 떨어지라고 하면 어쩌지 등등, 보통의 사내놈들이 스가와라를 보며 하는 생각과는 꽤 거리가 먼 쓰잘데기 없는 긴장들로 항상 신경이 곤두서곤 했던 것이다. 그러나 이런 자신의 애타는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스가와라는 너무도 긴장감이 없었다. 자연스럽게 어깨에 팔을 두르면 무겁다고 쳐내기 일쑤고, 기껏 생각해낸 말도 안 되는 핑계(수족냉증 때문에 손이 저리다는 등)로 손 잡을 구실을 만들어내면 손에 땀이 차서 싫단다. 그래도 이 정도만 했으면 서운하지는 않았다. 애가 너무 눈치가 없어 답답한 마음에 초딩보다도 못 한 고백아닌 고백을 했는데 그가 보인 반응은 차갑기 그지 없었다.



'사실 스가쨩, 너무 내 취향이라 계획적으로 접근한거야. 이제 나 볼때마다 긴장감 좀 가져줘.'

'뭐?'

'나 남자 좋아해.'

'아. 뭐...... 다 좋은데, 날 상대로 딸은 치지 말아줄래.'


라고 했던가.


오이카와 토오루, 짧은 22년 인생에 처음 만나는 최고난이도의 남자였다. 완전히 공략이 불가능할 것 같아 사실은 더 애가 타들어가는 것일지도 모른다. 남자가 좋다는 저의 말에 순수하게 '아, 얘는 남자를 좋아하는 애구나.' 하고 받아들이는 이 긴장감 없는 인사를 어떻게 공략해야한단 말인가. 솔직히 이 정도까지 패를 보여줬으면 저가 자신을 좋아한다는 것쯤은 어렵지 않게 예상 가능하지 않아? 오이카와는 깊은 한숨을 쉬며 어울리지 않게 담배를 피워대는 예쁘장한 얼굴을 바라보았다. 아. 진짜 얘 긴장감 없어. 진짜. 


스가와라는 마뜩찮은 얼굴로 저를 쳐다보는 오이카와에게 혓바닥을 내밀며 장난스럽게 웃었다. 그에 오이카와는 약이 올라 눈가가 새치름해졌다.


"허, 참......"

"잔소리 할거면 너네 과 애들이랑 놀아. 바쁜 사대생 삶에 감 놔라, 배 놔라 하지 말고."

"메롱 한 번 더 해봐. 좀 귀여운 것 같아."

"미친......"

"고따위로 말을 밉게 하니까 오이카와씨는 스가와라군의 귀여운 모습이 보고싶어진달까요."



스가와라는 오이카와의 말에 대꾸하지 않고 피다만 담배를 재떨이에 비벼껐다. 잔소리가 듣기 싫어 한 행동이었겠지만 그 모습마저도 오이카와에겐 귀엽게 느껴져 스스로를 한심하다 욕했다. 저 좋다고 난리를 치는 수많은 예쁜이들을 제쳐두고 제게 관심이라곤 개미 눈물만큼도 없는 외양만 천사인 상남자를 귀엽다고 생각하는 제 스스로에게 너무 어이가 없었기 때문이었다. 



오이카와는 마뜩찮은 표정을 하며 한 손에 턱을 괴었다. 앞에 앉아 노트북을 노려보며 과제를 하기 시작한 곱상한 얼굴이 퍽이나 진지했다. 순한 눈매 옆에 자리한 눈물점이 묘하게 사람을 설레게 했고, 마냥 여리게만 보이는 외모와는 다르게 강단있는 성깔은 또 어찌나 매력적으로 다가오는지. 결국은 저가 반할 수 박에 없다는 결론을 내리면서도, 오이카와는 속이 꼬였다. 저는 이렇게 좋아죽겠다고 쫓아다니며 구애를 하는데 관심 한 자락, 애정 한 자락 함부로 흘리지 않는 스가와라가 너무 야속해서.



"스가쨩, 오늘 우리집에서 자고 가라."

"싫어."

"왜에- 내가 마파두부 해줄게. 엄청 맵게 해서."

"과제 많아. 너 방해할 거 잖아."

"나도 과제 있거든. 방해 안 할게. 얌전히 과제 할게, 응?"

"신뢰도가 제로에 수렴하는 건 알고 있어? 한 번도 그 말 지킨 적 없거든, 너."

"야박하게 왜 이러실까? 오이카와씨 요즘 너무 외롭단 말이야."



스가와라는 오이카와의 투정에 대꾸하지 않았다. 그에 오이카와는 또 애가 타 입술이 바짝 마르는 기분이 들었다. 어떻게든 빌미를 만들어 같이 있고 싶은 마음을, 몰라도 너무 몰라주니 저가 점점 더 삐뚤어지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열 번 찍어 안 넘어 가는 나무 없다고들 하는데, 스가천사 나무는 어쩜 이렇게도 뚝심이 좋은지 도끼 날이 다 부서져라 찍어대는대도 흠집 하나 나지 않아 조바심이 났다. 이러니 내가 점점 성격 안 좋아진다는 소릴 듣지. 오이카와는 카페 의자에 몸을 파묻듯 기대며 인상을 썼다. 애초에 성미도 맞지 않는 짝사랑을 하려니 답답하고 짜증이 나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그렇다고 제게 관심도 없는 스가와라를 상대로 투정을 부릴 수도 없는 노릇이었기에 두배로 답답했다. 



오이카와는 스가와라에게 자신에 대해 최대한 좋은 이미지를 심어주고 싶었다. 진지하게 고백했을 때 아무리 노멀이라도 예쓰를 외칠 수 밖에 없는 사람이고 싶었기 때문이다. 그러기 위해 이 고생을 하고 있다지만 참으로, 더럽게, 진절머리나게도 성미와 맞지 않아 어두운 자아가 눈을 뜰 것 같다고 생각했다. 나이 먹어 중2병에 걸릴 자신을 생각하니 참으로 미래가 암담해 괜히 스가와라가 나쁜 것이라 탓을 하며 자리에서 일어섰다. 그에 지금까지 오이카와에게 눈길도 주지 않던 스가와라가 의아한 얼굴로 그를 올려다보며 말했다.



"어디가?"

"과제 한다며. 훼방꾼은 이만 가려고."



스가와라는 갖은 애교를 떨며 구애를 하던 모습은 어딜가고, 무심한 태도를 보이는 오이카와의 행동에 저가 너무 매몰차게 대했나 싶어 조금 미안해졌다. 



스가와라가 생각하는 오이카와는 외로움을 많이 타는 사람이었다. 그랬기에 항상 기댈 곳이 필요해보이는 녀석으로 생각했고, 오이카와가 남자를 좋아한다는 등의 핑계를 대며 저에게 달라붙는 것도 도쿄로 진학을 하며 친한 친구들과 떨어져 은연중에 느끼는 외로움을 해소하기 위한 행동이라 생각했다. 순전히 스가와라만의 오해에 불과했지만. 어쨌든 오이카와에 대한 이런 평가들이 스가와라에게 오이카와를 끝까지 매몰차게 대하지 못하게 하는 요소로 작용하는 것은 사실이었다.



오이카와가 가방을 챙겨드는 모습에 단단히 삐진 것 같아 스가와라는 난감해졌다. 딴엔 의지할 수 있는 동향 친구(?)에 대한 애정이었을 뿐인데, 너무 심하게 대한 것 같아 자꾸만 죄책감이 들었던 것이다. 스가와라는 가려는 오이카와를 잡아 세우며 말했다.


"장 봐서 들어가. 마파두부 해준다며."

"이미 버스 떠났네요."

"들어갈 때 우유빵 사갈까?"

"......맘대로 해."


'아. 진짜 삐졌어, 쟤.'


스가와라는 한숨을 쉬며 노트북을 접었다. 그리고 이미 카페를 나선 오이카와의 뒤를 쫓아 달렸다.


'얘를 또 어떻게 달래지......'




그러나 카페를 나선 오이카와의 얼굴에 함박 웃음이 핀 것을, 전혀 알지 못하는 스가와라였다.








쓰고보니 밀당 왕 오이카와......

전혀 애가 타지 않으신데요.....(흐릿




'스가른 > 단편' 카테고리의 다른 글

[오이스가] 어쩌다보니 中  (0) 2016.05.31
[오이스가] 어쩌다보니 上  (0) 2016.05.04

+ Recent pos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