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우야, 여우야


ㅈ.희삼



01.

쫑긋한 귀가 위 아래로 움찔거렸다. 자그마한 얼굴 위로 유독 큰 귀가 눈에 띄는 옅은 갈색의 여우는 나무 위에 앉아 사람들을 관찰하고 있었다. 그러나 정작 관찰하는 본인은 딱히 흥미를 보이는 것 같지도 않았고, 관심이 있어 보이지도 않았다. 얼굴 한 가득 짜증이 서려있다는 표현이 더 잘 어울릴 것 같은 무심한 얼굴이 꽤나 귀여운 편에 속했음에도 귀엽다는 말은 어울리지 않았다. 발간 눈동자가 섬세하게 사람들을 주시하고 있었지만, 그냥 그것이 다였다. 딱히 본인이 어떤 의도를 갖고 하는 행동은 아닌 것 같았다.

 

“......까짓 거 그냥 산속에서 살면 되는데.”

 

여우가 작게 투덜거렸다. 그러나 자신의 투덜거림이 얼마나 터무니없는 투정인지 잘 알고 있었다. 반인반수인 자신의 종족이 얼마나 인간들과 연결고리가 깊은지는 누가 설명해주지 않아도 깨닫고 있는 바였다.

 

반인반수인 여우 종족은 인간의 정기를 받아 인간과 같은 모습을 하지 않으면 사냥꾼들에 의해 목숨이 위험했다. 사냥꾼들이 여우를 사냥하는 이유는 간단했다. 돈이 되기 때문이었다. 그들은 여우 종족의 외모에 홀려 그들을 소장하고 싶어 하는 취미 고약한 부호들에게 비싼 값을 불러 돈을 벌어들이고 있었다. 인간의 정기를 받지 못 한 여우는 인간의 모습을 유지하기 어려웠기에 여우들은 자연스럽게 인간과의 관계를 통해 정기를 받았다.

 

대부분의 여우들은 인간과의 이러한 공생관계를 자연스럽게 받아들였다. 하지만 나무 위에 앉은 이 어린 여우는 그러지 못했다. 그래서 태어나 스무 해를 넘기면서도(보통의 여우들은 열 다섯 해를 넘기면 관계를 가지곤 했다) 인간과는 접촉해보지 못한, 길들여지지 않은 여우였다. 그래서 더 거부감을 가지고 있을지도 몰랐다. 어린 여우는 길들여진 여우들을 이해하지 못했다. 아니, 이해할 수는 있었지만 좀 억울하다고 생각했다는 게 옳을 것이다. 자유롭게 살기위해 원하지도 않는 인간의 정기를 받아야한다는 사실이 짜증났다.

 

혼자라면 까짓 거 사냥꾼을 피해 산속에 숨으면 그만이라 여겼지만, 여우는 집단생활을 하는 종족이었다. 그들 중 한 마리라도 사냥꾼에게 노출이 되면 그 집단은 끝이었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여기까지 내려왔다. 무리 안에는 자신이 세상에서 제일 사랑하는 가족, 제 누이도 있었기 때문에.

 

그러나 막상 내려왔다고는 해도 마음에 차는 인간이 없었다. 저 인간은 너무 약해보여서 탈락, 저 인간은 외모가 너무 취향이 아니어서 탈락, 저 인간은......분위기가 변태 같아서 탈락. 어린 여우는 이런 저런 핑계와 취향문제를 들먹이며 혼자만의 투정을 부렸다.

 

어떻게 한명도 마음에 드는 인간이 없냐.”

 

적당히 건강해보이면서, 또 적당히 뒤끝이 없어 귀찮지 않고, 몸뿐인 관계가 되겠지만 어쨌든 얼굴은 제 취향이었으면 좋을법한 적당한 남자를 찾기란 참 어려운 일이었다. 이 세상에 모든 일이 그렇듯 원래 적당히라는 기준이 제일 만족시키기 어려운 기준인지라. 여우는 무심한 얼굴을 한 채 작게 한숨을 쉬었다.

 

그러던 와중에 시야에 백발의 곱슬머리가 들어왔다. 세상천지에 재밌는 일이라곤 하나도 없어보이는 얼굴을 한 동태눈깔의 사내는 구부정한 차림으로 천천히 걷고 있었다. 이리저리 기웃거리는 모양새를 보아하니 할 일 없는 한량인 듯 했지만 전체적인 체격은 좋아 보여 건강에는 이상이 없어보였다. 게다가 저런 얼굴을 하고 뒤끝이 있어 보이진 않았고, 생긴 것도 나쁘지 않았다. 여우는 관심을 보이며 남자를 주시했다. 남자는 이리저리 기웃거리는가 싶더니 저를 지나치는 화려한 기녀를 유심히 눈으로 훑기 시작했다.

 

여우는 만족스럽게 웃으며 나무에서 뛰어내렸다. 그리고 남자를 향해 달리기 시작했다.

 

 

*

 

 

저기요, 형씨.”

 

여우는 남자의 앞에 섰다. 예의 귀여운 미소를 보이며 친근하게 말을 걸었다. 그러나 남자의 맹한 동태눈깔은 변함이 없었다. 남자는 소년을 아래위로 훑어보더니 이내 하품을 하며 꺼지라며 손을 흔들었다. 그에 여우는 억지로 웃으며 다시 말을 걸었다.

 

에이, 피차 귀찮지 않고 좋을텐데.”

사내놈한텐 관심 없어.”

나 처녀예요.”

처녀고 자시고 난 이게, ? 이게 중요한 사람이야.”

 

남자는 경박스럽게 가슴 쪽에 손을 올리며 여성의 가슴을 주무르는 듯한 손놀림을 해보였다. 그러나 여우는 한 번 더 남자를 꼬드겼다. 어렵게 발견한 마음에 드는 인간이라 아까웠기 때문이다.

 

에이, 그러지말고요. 나 여우라고요.”

가슴달린 여우로 데려와.”

취향에 뚝심이 있으시네.”

이왕이면 C컵 이상으로.”

.”

 

여우는 남자의 말에 저가 사람을 잘못 골랐다는 것을 깨달았다. 더 이상 꼬드겨봐도 남자는 저에게는 흥미를 느끼지 못할 터였다. 좀 아까웠지만 여우는 어깨를 으쓱여보이곤 이내 망설임 없이 뒤돌아섰다. 그나마 마음에 드는 사내였지만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여자가 아니면 싫다는데, 뭐 어쩔 수 있나.

 

그러나 여우는 은근히 기분이 좋아졌다. 사실 원치도 않는 관계를 오늘 당장 맺지 않아도 된다는 생각에 거절당하고 나니 오히려 속이 시원했다. 어차피 내일도 인간을 낚으러 내려와야 하는 처지가 되었지만 마음만은 가벼웠다. 매일 이렇게 거절당하다 보면 집단에서도 반쯤은 포기해주지 않을까, 하는 헛된 희망을 가진 탓이었다. 기분이 좋아지자 여우의 꼬리가 살랑거렸다. 여우는 귀를 쫑긋거리며 마을에 내려온 김에 느긋하게 시장구경이나 하다 돌아갈까 고민하다 제 누이의 머리장식을 하나 사서 돌아가기로 결정했다. 여우는 머리장식을 파는 장소를 묻기 위해 뒤를 돌아보며 남자에게 다시 말을 걸었다.

 

형씨, 여기 머리장식 파는 데가 어디 있어요?”

“......”

 

여우의 물음에 남자는 답이 없었다. 그런 남자를 이상하게 여긴 여우는 고개를 갸웃거리며 다시 남자에게 천천히 다가갔다.

 

저기, 형씨. 미안한데 여기 머리장식......”

.”

“......?”

그렇게 꼬리치기 있기, 없기?”

?”

생각 바뀌었다고, 이 여우놈아.”

 

 

02.

도대체 어떤 부분에서 남자의 마음이 움직인걸까. 여우는 남자에게 한쪽 팔목을 잡힌 채 끌려가다시피 하면서 이해할 수 없는 남자의 반응에 고개를 갸웃거렸다. 머리장식에 발정하는 인간도 있나? , 이 남자 혹시 변태 아냐? 잘못 걸린 거야?!

 

여우는 마른침을 삼키며 남자의 눈치를 살폈다. 살짝 인상을 쓴 얼굴이 미친놈 같기도 하고, 아닌 것 같기도 했다. 그러나 결론은 하나였다. 적당히 눈치를 보다가 기회를 보면 도망칠 것이다. 그러나 제 손목을 억세게 잡은 손은 좀처럼 느슨해질 기미가 없었다. 여우는 끌려가다시피 하면서 남자에게 말을 걸었다.

 

이봐요, 형씨. 취향에 뚝심이 있으셨던 형씨? 이것 좀 놓고 이야기 합시다, ?”

이제 와서 무르자고 해도 소용이 없지. 꼬리는 네가 쳤잖아?”

아니, 이봐요. 그건 맞는 말인데요. 싫다고 했잖아요, 댁이.”

그런데 생각이 바뀌었잖아, 내가.”

저도 생각이 바뀌었는데요.”

, 이 여우 놈이 사람을 홀려놓고 뭘 잘했다고 짹짹거려?”

혹시 취미가 그쪽입니까? , 싫다는 사람 끌고 가서 억지로 하는? 강간이라고 하죠?”

네가 인간이었으면 강간이었겠지. 근데, 너 여우잖아. 너도 지금 내가 필요한 거 아닌가?”

아니오. 필요 없는데요.”

거짓말 하면 엉덩이 뿔난다고 엄마가 안 가르쳐 주더냐? 귀랑 꼬리도 못 숨겨서 사람이나 홀리고 다니는 게.”

“......”

 

여우는 말문이 막혔다. 저를 돌아보며 비겁하게 웃는 남자의 얼굴이 역겨워 여우는 고개를 돌렸다. 그러자 남자가 웃었다. 여우는 자신이 사람을 잘못 골랐음을 깨달았다. 잡힌 손목이 저려왔다. 더 이상 도망칠 수 없었다. 여우는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

 

처음이니까 살살 부탁드립니다.”

 

여우의 말에 남자가 소리 내어 웃었다. 그리고 그제야 제 손목을 억세게 잡고 있던 손의 힘이 약해졌다. 도망칠까 생각했지만 이내 여우는 모든 걸 포기하고 남자가 이끄는 데로 끌려갔다. 도망쳐봤자 소용없다고 판단했기 때문이었다. 어쨌든 자신은 인간의 정기가 필요했고, 남자는 저에게 발정했다. 그리고 오늘이 지나면 한동안 여우는 완전한 인간의 모습으로 있을 수 있을 것이다.

 

십여분을 걸었다. 아니, 남자가 이끄는데로 끌려갔다. 멈춰선 곳은 허름한 모텔 앞이었다. 여우는 마른침을 삼켰다. 긴장이 몰려오기 시작했다.







제 트루 럽 모노님께서 내려주신 은혜로운 썰로 이런...............죄송합니다 

심지어 완성도 못시켰네요...하편도 시간나는 대로 써서 올리겠습니다. 언제가 될지 모르겠지만..........

하편은 보호예정입니다. 남은건 떡뿐이라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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