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념(邪念)



ㅈ.희삼


05.

이 멍청한 새끼가......”


히지카타는 부하의 방 문 앞에 서서 중얼거렸다. 살벌한 얼굴을 한 채로 가만히 문을 노려보며 다시금 담배를 물었다. 당장에라도 문을 부수고 들어갈 것처럼 굴었던 것과는 사뭇 다른 행동이었다. 담배 필터를 짓씹으며 앞머리를 쓸어 올리는 모양새가 치밀어 오르는 화를 애써 억누르는 것처럼 보였다. 히지카타는 크게 숨을 들이쉬고 뱉었다.


그래, 멀쩡히 들어왔으면 됐지.


속으로 열댓 번을 그렇게 중얼거렸던 것 같다. 그렇게 몇 번이나 제 마음을 진정시키고 나서야 히지카타는 제 부하의 방문을 열었다. 물론 노크를 한다거나 인기척을 낸다거나 하는 친절은 베풀지 않았다.


“......”


불 꺼진 방 안에 죽은 듯 이불을 덮고 누운 소년이 보였다. 창백한 얼굴이 달빛을 받아 더욱 혈색 없어 보였다. 히지카타는 짜증스러운 얼굴로 문을 닫고 들어오며 소년을 발로 툭툭 건드렸다.


자는 척 하는 거 다 알아. 눈 떠.”

“......안 통할 줄 알았어요.”

싸가지 없는 새끼가. 참아 주는 것도 한계가 있어.”

저한테 화난 건 알겠는데 내일 하면 안 됩니까? 저 되게 피곤한데요.”

.”

저 쓰러졌다는 얘기 못 들으셨어요?”

쓰러졌다는 놈이 어째 입은 살아있다?”

입만 살아 있는 거죠. 아직도 머리 아프거든요.”


소년은 히지카타가 들어왔어도 여전히 누운 채였다. 살벌한 얼굴로 화를 내고 있는 제 상사가 무섭지도 않은지 맹한 얼굴로 한 마디도지지 않고 따박따박 말대꾸를 해댔다. 히지카타는 소년을 죽일 듯이 노려보며 담배를 피워댔지만 딱히 더 무어라 소년을 질책하지는 않았다. 분명히 소년의 방으로 향했을 때와는 사뭇 다른 모습이었다.


사실 히지카타는 소년에게 화를 낼 수 없었다. 오늘이 소년에게 어떤 날인지, 그가 모를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아마도 오늘은 저도, 소년도 둘 다 맨 정신으로는 버티기 힘든 날 중 하나일 것이다. 히지카타는 그 사실을 너무도 잘 알고 있었다. 다만 그렇지 않은 척 무던히도 애쓰는 것뿐이었다.


봤을까, 소년이. 자신이 놓아둔 안개꽃을.


사실 보았어도 딱히 할 말이 없었고 무언가가 크게 달라지지도 않을 테지만, 히지카타는 소년이 보지 않았기를 바랐다. 소년이 그녀 앞에 도착하기 전에 겨울바람에 날려 흔적을 남기지 않기를 바랐다. 차라리 놓아두지 않았으면 되었겠지만 히지카타는 그럴 수 없었다. 제 미련한 첫 연심에 대한 일종의 반성과도 같은 행위였기 때문이었다.


히지카타의 머릿속이 온통 그녀로 가득 차 버리자 제 발치 아래 그녀의 얼굴이 어른거리는 듯 했다. 그러나 눈앞에 놓인 창백한 얼굴은 그녀가 아님을 히지카타도 잘 알고 있었다. 그는 털썩 소리를 내며 바닥에 앉았다. 그러자 소년이 인상을 쓰며 말했다.


안 나가십니까?”


짜증 섞인 목소리에 히지카타는 혀를 차며 조용히 욕을 읊조렸다. 그녀와 닮은 구석이라곤 반반한 낯짝이 전부인데 왜 녀석에게 이다지도 약해지는지 도통 이유를 알 수 없었다. 히지카타는 신경질적으로 소년의 이마에 제 손을 덮었다. 그러자 소년이 화들짝 놀라며 당황했다.


, 뭐하시는......”

뭘 얼마나 싸돌아 다녔기에 열이 펄펄 끓어?”

뭡니까, 갑자기.”

어지간히 아파서 네가 아프다고 말 할 놈이냐? 약은?”

“......이까짓 거 한숨 자고 일어나면 다 나아요.”

지랄......약 먹고 자라. 나갈테니.”


소년은 신경질적으로 제 이마 위에 올려진 히지카타의 손을 쳐냈다. 히지카타는 그러거나 말거나 신경 쓰지 않았다. 천천히 일어나며 제게 등을 보이며 누운 소년에게 말했다.


약 갖다주랴?”

좀 가세요. 잘 거니까.”

새끼, 성질은......”

, 히지카타 왜 안 죽냐....... 진짜 제발 좀 죽어라.”

“......너 인마, 열 내리면 보자.”

“......”


돌아누운 소년의 등이 아직도 한없이 작았다. 꼭 그녀의 뒷모습을 보는 것 같았다. 히지카타는 차오르는 잡념을 떨치고 조용히 방문을 닫고 나와야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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