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념(邪念)


ㅈ. 희삼


03.

지랄이 풍년이네, 아주.”


남자는 경쾌한 발걸음으로 카페에서 멀어져 가는 소년의 뒷모습을 보며 혀를 찼다. 빙수 그릇 옆에 가지런히 놓인 만 엔짜리 지폐 한 장이 더욱 더 그의 부아를 돋웠다. 마음 깊은 곳에서 우러나오는 이 빡침을 도대체 어떻게 풀어야 속이 시원할까, 남자는 고민했다. 콩알만 한 놈이 사람 염장을 지르는데도 유분수가 있지, 아주 싸구려 남창 취급을 하고 나가지 않았는가. 남자는 앞에 놓인 만 엔을 뚫어져라 쳐다보며 바득바득 이를 갈았다.


뭘까, 이 만 엔은. 요즘 꼬맹이들 사이에서 유행하는 신종 도전장인가?

도대체 아저씨들은 어떻게 요 맹랑한 놈들을 따라가야 하지?


아무리 생각해도 소년이 이렇게까지 삐뚤어진 것은 소년의 보호자, 마요네즈 귀신이 소년을 잘못 가르친 탓이라 여겼다. 남자는 그 두 놈들을 쌍으로 요절을 내야 속이 시원할 터였다.


남자는 남은 딸기 빙수를 입 안으로 털어 넣고는 앞에 놓인 만 엔을 챙겼다. 두 놈을 아주 쌍으로 요절을 내 버릴 것이라, 다짐하면서.

 


**

 


남자가 처음부터 소년과 소년의 마요네즈 상사를 고깝게 여긴 것은 사실이었지만 까놓고 말해 아주 싫어했다고는 말할 수 없었다. 쌀 한 톨 정도의 동질감과 그에 동반하는 약간의 친밀감 정도는 있었달까? 소년의 마요네즈 상사는 제쳐두고, 소년만으로 본다면 친밀감이나 동질감 따위의 감정이 아닌 측은한 마음이 더 컸지만서도 어찌되었건 불호와 호를 두고 본다면 그 중간 어딘가 쯤에서 아슬아슬한 줄타기를 하고 있었더랬다.


솔직하게 말하자면 호감에 가까운 감정이었지만 남자는 애써 부정하기 바빴고, 인정하고 싶지 않았다. 다만 그래도 확실한 것은 어린 것이 불쌍하게 되었다고, 남자는 생각했다.


제 누이가 죽는 것을 옆에서 지켜봤으니 그런 생각이 드는 것은 당연했다. 어린놈이 어울리지 않게 싸가지가 없이 당차게 구는 것도, 맹한 얼굴로 생각 없이 검이나 휘두르는 불한당처럼 행동하는 것도 다 일종의 자기 보호 수단이라 생각했다. 원래 내면이 약한 녀석일수록 겉은 화려한 법이고, 약점을 감추려 강한 척을 하기 마련인 법이니까. 그 어린 것이 속은 새카맣게 문드러졌는데도 태연한 척을 해대는 꼴이, 지켜보는 입장에서는 그저 측은한 마음뿐이었다. 물론 생각만.


이런 상냥한 마음을 가지고 있는 선량한 아저씨에게 만 엔짜리 한 장을 던져 주며, 나랑 잘래요? 라는 되먹지 못한 언사를 내뱉은 꼬마가 남자는 굉장히, 매우, 몹시도 거슬렸다. 요 일주일동안 긴장을 놓는 순간, 순간에 '나랑 잘래요?'라고 말하는 맹랑한 목소리가 귓전에서 들렸고 남자는 그 순간, 순간 최대치의 스트레스를 느끼며 분을 삭여야 했다. 도대체 제 누이의 손을 애절하게 붙들고 울음을 삼키던 그 청순한 꼬마는 어디로 간 걸까.


남자는 양 손으로 이마를 짚으며 한숨을 쉬었다. 그리고


'나랑 잘래요?'


또 소년의 맹랑한 목소리가 귓전에 울렸다. 남자의 인내심은 이제 한계였다. 그러나 남자는 한 번 더 참기로 했다. 여기서 무너지면 제 자존심이 허락하지 않는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남자가 억지로 딴 생각을 하려하면 할수록 이상하리만치 그날의 기억이 선명하게 떠올랐다. 턱을 괴고 무심한 얼굴로 저를 흘깃 쳐다보며 말했던 그 순간이 느릿느릿하게 눈앞에서 재생되는 느낌이었다. 그리고 또 남자의 귓가에 소년의 목소리가 들렸다.


나랑 잘래요?’

그래, 자자, !!!”


남자는 협탁에 쾅쾅 머리를 박으며 미친 사람처럼 중얼거렸다. 이제 될 대로 되라지. 자조 섞인 중얼거림이 앞으로의 계획을 말해주는 것 같아 속이 꼬였다. 아무리 생각해도 저는 소년에게 놀아난 것 같았다. 남자는 이를 갈며 협탁에 다시 한 번 머리를 박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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