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념(邪念)




ㅈ.희삼


01.

때 아닌 겨울비가 내렸다. 유난히도 할 일 없이 한가했던 터라 하루 일과에 지장이 있지는 않았으나 겨울비라는 것이 그랬다. 사람을 축 처지게 만드는 기운이 있었다. 소년은 나른하게 감기는 눈꺼풀을 애써 말리지 않았다. 감기는 대로 놓아두고 방바닥에 벌렁 드러누웠다. 그는 눈을 감은채로 생각에 잠겼다. 쓰잘데기 없는 잡념이 머릿속으로 밀려들어왔다. 소년은 그런 것을 좋아하지 않았다. 좀 더 확실하게 말하자면 싫었다. 잡념은 소년을 집어 삼키듯 위협적으로 밀려들었기 때문이었다.


다른 사람들은 소년에게 밀려드는 잡념을 사랑, 혹은 애정이라고 불렀다. 소년은 그 낯간지러운 표현이 싫었다. 그런 달달한 네임코드를 갖다 붙일만한 감정이 아니라고 여겼다. 적어도 자신에게만큼은. 누군가는 사춘기 미성년자의 허세로 폄하할지 모르겠으나, 진실로 그런 달작지근한 말과 제 애정은 거리가 멀었다. 할 수 있다면 머릿속에서 파내버리고 싶은, 바람직하지 못한 감정이었기 때문이었다.


세상천지에 제 누이의 남자를 탐하는 사람은 없다. 애정의 상대가 같은 사내라 해도 그런 일은 없어야 하는 것이었다. 제 누이가 이미 죽고 없다고 해도 그것은 도리가 아니라, 소년은 그렇게 여겼다. 진실로 제 누이와 그가 이어졌다고 묻는다면, 부정의 대답이 나오겠으나 소년은 그런 것은 아무런 상관이 없다고 생각했다. 그러거나 말거나 둘이 죽고 못 살아 그렇게도 애틋했는데, 그 마음을 확인하고 자시고는 의미 없는 일이었다.


그러나 아이러니하게도 소년은 여전히 제 누이를 사랑했고, 남자 또한 사랑했다. 그래서 바람직하지 못한 감정이었다. 부정한 마음이라 생각했다. 처음부터 없었던 감정이고 싶었다. 차라리 몰랐다면 행복했을 것이라 여겼기 때문이었다.

아마도 이런 제 자신의 부정한 마음 때문이었는지 몰랐다. 하늘은 누이는 죽였다. 미처 손 쓸 세도 없이 소년에게서 하나 남은 혈육을 데려가 버렸다. 그러나 소년이 사랑하는 남자는 살아있다. 그리고 소년도 살아있다.


소년은 저를 잠식하는 부정한 사념의 늪 속에서 생각했다. 죽어야 했던 사람은 저라고. 세상에서 없어야 하는 것은 소년, 자신이어야 했다.



**


어떤 일이 잘못되었을 때, 사람들은 보통 어디서부터 잘못되었는지를 생각한다. 소년도 보통의 사람들과 다르지 않았다. 처음에는 잘못된 것이 무언인지, 누가 잘못한 것인지를 먼저 생각했다. 보통의 사람들은 주로 남 탓을 하기에, 소년도 크게 다르지 않았고 평범한 결론을 내릴 수 있었다. 이 모든 일이 다 그 사내, 히지카타 때문이었다.


그렇게 여기면 마음이 편해졌다. 제 누이도, 저도, 소년이 사랑하는 사람들은 모두 잘못되지 않았고 잘못된 것은 히지카타 하나였다. 그 사내가 제 삶에 끼어들면서부터 모든 것이 어긋났고 삐뚤어지기 시작했다고 천 번을 마음속으로 되뇌며 사내를 나쁜 놈으로 여겼다. 제 누이가 죽기 전까지는.


제 누이가 죽은 후로는, 글쎄. 사실 그런 쓰잘데기 없는 생각으로 시간을 보내기엔 제 감정을 추스르기가 여의치 않아 아무런 생각도 하지 않았다. 누가 뭘 어떻게 잘못했는지가 뭐가 그리 큰일이라고 그 사내를 그렇게까지 미워했을까 싶은 마음까지 들어 누이도, 그 사내도, 저도 사실 다 불쌍했다. 누이는 죽었고, 사내는 사랑하는 여인을 잃었고, 소년은 세상에 혼자 남겨졌다. 셋 다 불쌍했다.


그렇게 2년이 지났다. 희미해질 법도 한 누이의 죽음은 크게 흉진 상처처럼 흔적이 남았다. 그것도 눈에 잘 띄는 곳에 남겨진 흉터 같았다. 희미해지기는커녕 점점 더 진해졌다. 꼴 보기 싫어 가려버릴 수도 없는, 그런 흉터였다.


그 사내, 그러니까 히지카타는 제법 잘 견디고 있어보였다. 그 속이야 알 바가 아니었고 겉보기에는 그래보였다. 소년보다는 훨씬 더 잘 버티고 있는 것 같았다. 죽은 사람 붙들고 살 위인이 아니라는 것쯤은 진즉에 알고 있었지만 소년은 왠지 모르게 그런 그가 얄미웠고 한 편으론 그 사내다워서 좋았다. 그리고 그 좋음의 한구석쯤에 약간의 기대가 없었다고 한다면 그것은 새빨간 거짓말이었다.


사람이 이렇게까지 간사할 수가 있나 싶어 제 누이의 흔적이 짙게 배인 삶의 곳곳에서 저를 비난하는 화살들을 부러 찾아냈다. 그리고 억지로 몸을 들이밀며 소리 없는 비난을 맨몸으로 맞았다. 따끔거리는 상처가 하나, 둘 늘어날 때마다 제 부정한 마음에 대한 대가를 치렀다는 안도감이 들었다. 그 안도감이라는 것도 자기만족이었지만 그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소년은 견딜 수 없이 괴로워 질 것을 잘 알고 있었다. 취미에도 없는 자학이었지만 오직 이 방법만이 제 누이에게 속죄하는 길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정작 제 누이는 그런 것으로 소년을 괴롭힐 사람이 아니었다. 소년은 잘 알고 있었지만 멈출 수가 없었다.


제 마음 한 끝자락도 히지카타에게 주어선 안 된다고. 그렇게 소년은 제 잘못을 인정했고 다시 천 번을 되뇌었다. 사실 나쁜 놈은 저였고 죽어야 했던 사람은 소년 자신이었다.







장편입니다

2017년도 목표는 이걸 완결내고 책으로 엮어내는 것이랍니다

물론 계획일 뿐....^^....

 

 

'오키른 > 장편' 카테고리의 다른 글

[긴오키히지] 사념(邪念) 03  (0) 2017.01.31
[긴오키히지] 사념(邪念) 02  (0) 2017.01.24
[긴오키] 기담 other side 04  (2) 2016.10.23
[긴오키]기담 other side 03  (0) 2016.06.19
[긴오키] 기담 other side 02  (0) 2016.06.14

+ Recent pos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