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희삼


03. 미성년자 강제추행

그로부터 한 달이 지났다. 웃기게도 시간이 지나면 지날수록 그 백발의 변태에 대한 기억은 선명해졌는데, 통째로 날려버린 일순간의 기억은 무슨 짓을 해도 기억나지 않았다. 소년은 그에 대해 의문을 품으면서도 진실에 다가갈 수 없어 답답했다. 왜냐하면 신기하게도 그 날 이후로 변태의 머리카락 한 올 조차 볼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가부키쵸 거리를 전전하는 평범한 변태였다면 길가다가 우연히라도 한 번 마주칠 법 했지만 신기하게도 단 한 번을 그와 마주치는 일 없이 한 달이 흘렀다. 그리고 오늘도 역시나 아무런 이벤트 없이 하루가 흘러갈 예정인 듯 했다. 그래, 차라리 아무 일도 없어라. 소년은 속으로 개인적 소망을 되뇌며 익숙한 경단 가게로 들어섰다


?”

?”


, 어떻게 사람이 한 치 앞을 못 보고 살까.


방금 전에, 그러니까 10초도 지나지 않았을 것이다. 차라리 아무 일도 없어라 소원했건만, 제 눈앞에 하얀 더벅머리의 변태가 입 안 가득 경단을 물고 있었다. 소년은 제 눈앞에 선 변태를 보고 어처구니가 없어 멍하니 그를 쳐다볼 뿐이었다. 변태도 마찬가지인 모양인지 입 안에 든 경단을 씹어 삼키지도 못한 채 소년을 뚫어져라 쳐다볼 뿐이었다.


“......일단 입에 든 거는 다 삼키시죠?”

, 어어.”


소년은 꽤나 재수 없게 기억되고 있는 변태의 한 달 전 얼굴이 어른거렸다. 그리고 눈앞에 멍청한 얼굴로 경단을 씹어 삼키는 인생 패배자 같은 꼴의 변태를 보고 있자니 살짝 김이 새버린 기분이 들었다.


, 이 집 경단 진짜 맛있단 말이지.”

낮에 보니 또 새롭네요, 형씨는.”

그럼 먹고 가라고. 난 이만-”

저랑 얘기 좀 하시죠.”

아니, 난 좀 바빠서.”

그 말을 믿을 정도로 멍청하진 않은데요.”

아저씨는 얼라랑 노는 취미가 없거든.”

한 달 전에 미성년자 상대로 성매매 하신 분이 할 말은 아니라고 봅니다만.”

순진한 아저씨를 요망한 미성년자 계집애가 꼬득인거지! 이게 공권력 좀 휘두른다고 말을 막 지어낸다?! 난 피해자였다고. 피해자!”

아직도 순진하다는 형용사를 모욕하십니까?”

이 꼬맹이가 진짜!”


반쯤 들어 올린 주먹이 소년의 머리통을 향하다 멈췄다. 소년은 눈 하나 깜빡이지 않고 남자를 올려다보고 있었다. 남자는 주먹을 쥔 손을 움직여 제 머리칼을 헤집는데 사용했다. 소년은 그에 상큼하게 웃으며 남자의 다른 쪽 손목에 수갑을 채웠다. 물론 탈주에 대비해 자신의 손목에도 한 쪽 수갑을 채우는 것을 잊지 않았다.


그럼 갈까요?”


남자는 또 다시 재현된 한 달 전의 상황에 어이가 없어 헛웃음이 나왔다. 제 시선 아래에서 귀엽게 웃고 있는 소년의 얼굴을 그냥 아까 한 대 쥐어박았어야 했는데, 라는 영양가 없는 생각을 하면서 터덜터덜 소년을 따라 경단 가게를 나섰다. 수박 같이 맨질맨질한 뒤통수가 유독 조막만해 보였다. , 역시 한 대 쥐어박았어야 했다.

 

  *


한 쪽 팔에 은팔찌가 덜렁거리는 느낌이 영 거슬렸다. 남자는 터덜터덜 소년의 뒤를 따르며 고뇌에 빠졌다. 아무래도 끈질긴 상대에게 걸린 것이 확실했다. 그 날 그렇게 생각 없이 명령하는 것이 아니었다. 아니, 아예 명령을 할 바에 저에 대한 기억을 통째로 없애버려야 했다. 남자는 마음이 급해 소년에게서 빠져나가는 데에만 급급했던 과거의 자신을 탓했다.


더군다나 소년과의 거리가 좁혀졌다 멀어졌다를 반복하며, 아래에서 올라오는 달짝지근한 냄새가 남자를 곤란하게 만들고 있었다. 사실 남자도 종속이라는 것을 처음 가져보는 터라 이렇게까지 단내가 진동을 할 줄 몰랐다. 막연하게 그저 단내가 나는 인간은 종속일 가능성이 높다, 라는 피상적인 지식만 있었을 뿐이었는데 혹시나 하는 마음에 명령을 내려 본 것이어서, 솔직하게 말하자면 소 뒷걸음질 치다 개구리 잡은 겪이 맞았다. 잡은 개구리가 안 터져 죽고 다시 제 앞에 나타나 사람 피를 말리고 있다는 것이 아이러니였지만 말이다.


달짝지근한 복숭아 향인 것 같기도 했고, 또 다시 맡아보면 설탕에 절인 딸기 향인 것 같기도 했다. 분명 샴푸 냄새가 나야할 머리칼이 제 코앞을 스칠 땐 생각했던 모든 단내가 한꺼번에 밀려들어와 남자를 어지럽게 만들었다. 남자는 흡혈의 욕구가 올라와 현기증이 날 것 같았다. 그래, 최근 들어 인간의 피를 마셔본 지가 언제인지도 모를 정도로 까마득하게 흡혈을 하지 않았긴 했다. 하지만, 아무리 그래도 이 사태는 조금 심각했다. 벌건 대낮에, 유동인구도 꽤 되는 거리에서 이성을 잃고 어린 소년의 목덜미에 송곳니를 처박는 사태가 벌어질 것 같았기 때문이었다. 아아, 긴토키씨는 참을 수 있을 겁니다. 참아야 합니다. 머릿속으로 참을 인을 무던히도 새겼다. 남자는 흡혈의 욕구로 인해 손끝이 떨릴 지경이었다. 남자는 최악의 사태를 막기 위해 걸음을 멈추었다.


“......또 바닥에 드러누우실 겁니까?”


소년이 경계어린 눈으로 남자를 훑어보았다. 남자는 정말로 드러누울 계획이었는지 시선을 피하며 중얼거렸다.


아니, 내가 현기증이 나서 그러는데...... 일단 이거 좀 풀면 안 될까?”

그 말을 믿을 거라 생각하진 않으시죠?”

아냐, 아저씨가 진짜 당이 부족해서 그러거든. 여기 손 떨리는 것 좀 봐!”


소년은 미심쩍은 얼굴로 저와 연결된 팔을 쳐다보았다. 거짓말처럼 남자의 손끝이 떨리고 있는 것이 보였다. 소년은 어이가 없어 헛웃음이 나왔다. 방금 전까지 경단을 우적우적 씹어 삼키던 남자였다. 그런데 왜 당이 모자라서 손이 떨리는 건지. 상식적으로 이해가 되지 않아 소년은 수갑을 풀어야하나 말아야하나 고민했다.


형씨, 혹시 약 같은 거 하십니까?”

아니거든, 임마!! 넌 세상이 밝고 아름다워야 할 꼬맹이 주제에 하는 말마다 삭막하기가 그지없냐?!”

풀어주면 도망갈 거 같아서요. 내가 의심이 좀 많아요.”


남자는 점점 인내심이 바닥나갔다. 소년이 쫑알거리며 말을 할 때마다 진해지는 단내에 동공이 벌어지기 일보 직전이었다. 그러나 소년은 그런 남자의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맹한 얼굴로 저를 올려다보며 요망을 떨었다.


그럼 하나만 알려줄래요?”

..... 뭐가 궁금한데?”

내가 형씨한테 멱살이 잡힌 다음부터는 기억이 없거든요. 그날 아침에 눈 뜰 때까지.”

치매라도 왔나보지.”

그런 것 치곤 난 형씨 얼굴을 너무 생생하게 기억하거든요.”

짧게 해. 아저씨는 인내심이 곧 바닥날 거 같으니까.”


사실 남자는 소년의 말이 더 이상 귀에 들어오지 않았다. 적당히 대꾸하고 있는 것뿐이었고, 눈앞에 얼핏 보이는 소년의 새하얀 목덜미만이 남자의 오감을 사로잡고 있을 뿐이었다.


그 날 수갑 어떻게 풀고 도망갔어요?”

어렵지 않았지.”


.


남자는 점점 더 진해지는 단내에 눈을 감았다. 이제 자신이 무슨 말을 지껄이고 있는지도 사실은 잘 몰랐다. 그저 혀가 움직이는 대로 말을 내뱉었고, 남자의 머릿속은 쓸데없게도 목덜미를 물어뜯으면 이 벌건 대낮에 엄청난 해프닝이 벌어진다는 걱정뿐이었다.


목덜미는 안 돼. 목덜미는 안 돼. 다른 방법을 생각하자.


제대로 대답하고 있는 거 맞아요? 나 좀 어이없어지려고 하는데.”


소년은 용케도 남자의 상태가 이상함을 알아채고 의구심 가득 찬 눈으로 남자를 올려다보았다. 눈을 감고 선 남자에게서 왠지 모를 위험이 느껴졌다면 이상할까. 하지만 소년은 왜 갑자기 긴장감이 몰려오는지 알 수 가 없었다. 소년은 저도 모르게 마른침을 삼키고 뒷주머니에 넣어둔 수갑 열쇠를 더듬거리며 찾았다.


이렇게까지 단내가 날 줄은 몰랐는데.”

“......?”


남자는 천천히 눈을 뜨며 소년을 내려다보았다. 남자의 눈이 반쯤 맛이 간 것처럼 보였다. 소년은 제 손에 수갑이 채워져 있는 것을 생각하지 못하고 뒷걸음질 쳤다. 그에 남자는 수갑으로 연결된 소년의 팔을 잡아끌었다. 소년은 남자와의 거리를 벌리지 못한 채 차오르는 긴장감에 옅게 숨을 헐떡였다.


소년은 태어나서 겪어보지 못한 느낌의 공포를 느끼고 있었다. 죽음을 마주했을 때의 느낌과는 차원이 달랐다. 옴짝달싹 할 수 없는, 저 밑바닥에서부터 타고 올라와 저를 옥죄는 그 무언가가 제대로 호흡하는 것조차 허락하지 않는 것 같아 두려웠다.


가르쳐줄까?”

“......”


남자가 말했다. 소년은 무어라 대꾸할 수 없었다. 고개를 끄덕이는 것조차도 할 수 없었다. 그런 사소한 움직임까지 허락받지 못한 느낌에 소년은 잠시나마 숨을 멈추고 남자를 올려다보아야 했다. 그리고 그 순간 소년은 남자에게 멱살이 잡혔다. 그와 동시에 강한 힘으로 그의 앞으로 끌려갔고, 남자와 제 입술이 맞닿았다. 성급하게 입 안을 열고 들어오는 남자의 혓바닥이 뱀처럼 소년의 입안을 훑어댔다. 그리고 소년은 자신의 혓바닥을 물어뜯는 남자의 송곳니를 느낄 수 있었다. 입 안에서 퍼지는 비릿한 피 냄새에 버둥거리며 남자를 밀어냈지만 남자는 움직이지 않았다. 그는 쪽쪽거리는 소리가 날 정도로 제 입안을 빨아댔다. 소년은 경악하며 발버둥 쳤지만 남자의 품에서 벗어날 수 없었다.


소년은 제 혓바닥이 이러다 진짜로 두 동강이 나버리는 것은 아닌가 걱정했다. 그와 동시에 정신이 몽롱해지는 것 같았다. 아아. 이 변태 사이코 새끼를 어떻게 족쳐야 속이 시원해질까. 소년은 화가 치밀었으나 왜인지 모를 공포에 그저 남자에게 멱살을 잡힌 채 버둥거려야 했다.


그리고 그 긴 시간 내내 남자에게 영문 모를 입맞춤을 당한 뒤, 소년은 또 기억을 잃어버리고 말았다. 기억나는 것이라곤 흐릿한 시야 속에서 제 귓가에 대고 음침하게 지껄여대던 남자의 마지막 말 한마디가 전부였다.


해가 지면 날 찾는 걸 허락할게.’






왜 내일이 월요일인거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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