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담 other side

ㅈ.희삼



01. 진선조의 가장 어린 대원

하늘을 올려다보는 눈가가 시렸다. 매서운 겨울바람이 앳돼 보이는 얼굴을 사정없이 할퀴고 지나간 탓이었다. 작게 열린 입술 사이로 흩어지는 숨이 하얗게 안개처럼 일다 공기 중으로 흩어졌다. 소년은 공원 벤치에 앉아 하늘을 올려다 본 채 의미 없이 숨이 흩어지는 것을 관찰했다. 마치 엄동설한의 겨울바람을 비웃기라도 하듯 얇은 제복 차림으로 그렇게 몇 분이나 하늘만을 바라본 채로 소년은 움직이지 않았다.


그러나 그것도 잠시. 멀리서 걸어오는 잘생긴 사내가 소년을 짜증스럽게 부르며 다가왔다. 소년은 이마 위로 올려두었던 수면안대를 부러 내려 눈을 가린 채 잘생긴 사내를 무시했다. 화가 난 목소리가 소년의 귓전을 때렸지만 소년은 보란 듯 못 들은 척을 하며 사내의 약을 올렸다. 그러자 사내가 거친 손길로 소년의 눈을 덮어씌우고 있던 안대를 강제로 벗겼다. 그에 소년의 머리칼이 헝클어지며 겨울바람에 흩날렸다. 그러나 소년은 여전히 눈을 감은 채였다. 사내는 아랑곳하지 않고 안대를 바닥에 던져놓았다. 흙바닥에 떨어진 안대가 순식간에 더러워졌다. 그제야 소년은 천천히 눈을 떴다.


눈꺼풀 사이로 홍채의 색이 피처럼 발갛게 드러났다. 생기라고는 하나 없는 눈이 소름끼치게 차가웠다. 소년은 그 눈으로 더러워진 안대를 힐긋 보더니 제 앞에 선 사내를 노려보았다. 그러나 제 앞에 선 사내, 소년의 상관은 개의치 않고 소년을 바라보며 말했다.


꼴아보면 어쩔 건데, 자식아.”

딱히 꼴아본 건 아닌데요.”

그럼 그따위로 쳐다보는 걸 뭐라고 하냐?”

그냥 본 건데, 왜요? 뭐 저한테 켕기는 거라도 있으십니까?”

너 진짜 그 말대꾸 하는 버릇 안 고쳐?”

고칠 생각 없는데요.”

싸가지 없는 자식.”

원래 있었던 것도 아닌데요, . 눈 색깔 바뀌기 전에도 이랬잖아요.”

“......”

바뀐 건 히지카타씨에요. 전 아무것도 바뀐 거 없어요.”


소년이 무미건조하게 말하며 땅에 떨어진 안대를 주웠다. 안대에 묻은 흙을 탈탈 털고는 다시 제 이마 위로 대충 걸쳐 놓자 기분이 나아진 듯 보였다. 소년은 그제야 개구지게 웃어 보이며 제 상관을 올려다보았다. 그러나 히지카타는 웃지 않았다. 살짝 찡그려진 미간이 소년에게 미안해하는 것 같았다. 그 얼굴을 본 소년이 대번에 인상을 쓰며 말했다.


제가 선택한 거니까 그런 얼굴 하지마세요.”

알아.”

그럼 왜 눈 색깔 얘기만 나오면 그래요? 내가 바뀐 건 그거 하나뿐인데.”


히지카타는 짜증이 서린 얼굴로 저를 올려다보는 소년을 보며 생각했다. 그래서 문제라고. 그 날로부터 3년이나 지났지만 소년이 변한 거라고는 홍채의 색깔이 전부였다. 아직 어려 얼굴에 주름이 생기기엔 이르다는 차원의 문제가 아니었다. 소년은 그날 이후로 한 번도 머리카락을 자르거나 다듬어 본 적이 없었다. 손톱과 발톱도 다듬지 않았다. 그러나 상처가 나거나 손톱이 부러지거나, 혹은 머리카락을 한 움큼 쥐고 잘라 놓으면 다음 날 아침쯤에는 다시 원상복귀 되곤 했다. 말 그대로 신체의 노화와 성장이 완전히 멈추어버린 것이다. 소년은 스무 살의 그 날로부터 한 살도 먹지 않은 채로 3년을 보냈다. 소년의 이러한 증상은 아마도 그 앰플의 부작용임이 틀림없었다.


당시에는 소년을 살릴 수만 있다면 그 어떤 결과도 받아들이겠다 생각했다. 그러나 사람 마음이라는 것이 간사했기에 소년이 인간으로서의 생체 사이클에서 벗어나기 시작했다는 생각이 드는 시점에서부터 히지카타는 한없이 그에게 미안해졌던 것이다. 저가 소년이 인간으로의 존엄을 지키며 죽을 수 있는 권리를 빼앗은 것은 아닐까, 두려운 것이었다.


히지카타씨.”

“......”

당신이 날 이렇게 만든 게 아니라, 내가 선택한 거라고요. 아시겠어요?”

알아.”

알면 그런 얼굴 하지 마세요. 짜증나니까.”

히지카타는 앞서 걷기 시작한 소년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소년에게 앰플을 가져갔던 날의 밤을 회상했다.

 

 

 

 

초점을 잃은 눈이 저를 바라보는 것처럼 느껴졌다. 얕게 숨을 헐떡이면서도 소년은 침상에 기대 앉아 히지카타를 맞이하고 있었다. 희미하게 웃어 보이는 것도 같았지만 표정의 변화를 알아채기엔 입술의 움직임이 거의 없다고 봐야했다. 히지카타는 출입문을 닫고 소년이 앉은 침대로 다가갔다. 소년이 미간을 찡그리며 초점이 맞지 않는 눈에 히지카타를 담으려 애썼다. 소년의 그런 사소한 노력이 히지카타를 더욱 못 견디게 만들었다.


히지카타는 소년의 침상 옆에 놓인 간병인 의자를 꺼내 앉았다. 옆에서 바라본 소년의 몸이 부서질 듯 가늘었다. 살이 얼마나 빠진 것인지는 몰라도 건강했을 때의 모습과 체격차이를 한 눈에 봐도 알 수 있었다. 마치 죽기 직전의 제 누이의 모습과 흡사해 히지카타는 더 이상 소년을 똑바로 볼 수가 없었다. 죽음을 앞두고 창백한, 그러나 꽃보다 고왔던 제 정인의 얼굴이 떠오름과 동시에 마지막 모습까지 파노라마처럼 밀려들어 히지카타는 소년의 증세를 받아들이기가 힘들었던 것이다. 히지카타는 왼손에 쥔 앰플 병을 침상 옆 협탁에 올려두며 소년을 외면한 채 말했다.


“......몸은?”

이제 앞이 잘 안 보이네요.”

의사가 뭐래?”

저한텐 좋은 소리 많이 하죠.”

“......”

곤도씨한텐 가망이 없다고 말했지만.”


소년은 태연하게 웃으며 제 죽음을 받아들이는 것 같았다. 히지카타는 마른 침을 삼켰다. 어떻게 말을 꺼내야 할까? 찰나의 고민이었다. 소년은 그런 히지카타를 놓치지 않고 초점 없는 눈동자로 그를 보며 말했다.


할 말 있으세요?”


히지카타는 힘들게 소년을 바라보았다. 초점 없는 눈동자가 저를 시야 담기 위해 필사적으로 미간을 찌푸리고 있었다. 색소를 빼앗긴 홍채가 빛을 차단하지 못해 눈이 부신 모양인지 자꾸 고개를 아래로 떨구는 꼴에 히지카타는 억장이 무너지는 기분이었다. 거기에 핏기 없는 입술 사이로 가는 숨이 끊어질 듯 끊어지지 않을 듯 새어나왔다. 폐가 손상되어 숨이 얕아진 것이었다. 저 상태라면 길어봤자 한 달이었다. 히지카타는 결심한 듯 소년에게 조심스럽게 물었다.


살 수 있는 방법이 있다면 어떻게 할래?”

살아야죠.”


대답에 망설임은 없었다. 그러나 소년은 힘들게 웃으며 말했다.


살 수가 없으니까, 문제잖아요.”


필사적으로 웃는 얼굴이 곧 울 것 같았다. 히지카타는 결심을 굳힌 듯 협탁에 놓았던 앰플 병을 집어 소년의 손에 쥐어주었다.


이걸 마시면 죽을 수도 있지만 살 수 도 있어.”

“......”

살 확률은 거의 없다고 봐야 돼.”

자기 일 아니라고 너무 쉽게 말하시는 거 아닙니까?”

넌 운이 좋은 새끼니까......”


히지카타와 소년은 한동안 말이 없었다. 소년은 앰플을 쥔 손을 멍하니 바라보며 생각에 잠긴 것 같았다. 히지카타는 소년이 생각을 마칠 때까지 끈기 있게 기다렸다. 그리고 마침내 소년이 입을 열었다.


“......히지카타씨.”

.”

너무 살고 싶은데......당장에 죽을 수도 있다고 하니까 좀 무섭네요.”


소년의 손끝이 떨리고 있었다. 차분한 목소리였지만 어딘지 모르게 불안함이 느껴졌다. 히지카타는 입술을 달싹이며 다음 말을 할지 말지를 망설이는 소년을 기다렸다. 그리고 한참이 지나서야 소년이 말했다.


마시는 거, 도와주세요.”


소년의 말이 끝나자마자 히지카타는 망설임 없이 앰플 병을 소년의 손에서 빼앗았다. 그리고 뚜껑을 열어 제 입에 털어놓고는 소년의 입술을 찾았다. 제 옷깃을 쥔 소년의 손이 바르르 떨리는 것을 느끼며 히지카타는 소년의 목구멍으로 앰플을 흘려 넣었다.

 

 

 

 

소년이 정신을 차렸을 땐 앰플을 마신 날로부터 한 달이나 지난 뒤였다. 눈을 떴을 때 선명한 병원 천장의 무늬가 보이자 그제야 저가 살아난 것을 알 수 있었다. 돌아온 시력을 느끼기도 전에 크게 내뱉은 숨에서 더 이상 폐부를 짓누르는 아픔이 사라졌던 것이다. 소년은 천천히 몸을 일으켜 병실을 둘러보았다.


“............”


듣기 싫게 갈라졌지만 제 목소리가 맞았다.


넌 운이 좋은 새끼니까......’


살아 있음을 확인하고 나니 히지카타가 했던 말이 떠올랐다. , 진짜로 운 좋구나. 괜히 웃음이 나왔다. 살았다는 안도감과 함께 살아있음에 감사했다. 그때까지는 그랬다. 다시 얻은 삶에 감사하고, 또 감사했다. 그러나 그 감사가 원망으로 바뀌는 데까지는 그리 긴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이 화력이 언제까지 유효할것인가.....




'오키른 > 장편' 카테고리의 다른 글

[긴오키히지] 사념(邪念) 01  (0) 2017.01.23
[긴오키] 기담 other side 04  (2) 2016.10.23
[긴오키]기담 other side 03  (0) 2016.06.19
[긴오키] 기담 other side 02  (0) 2016.06.14
[긴오키] 기담 other side  (2) 2016.06.13

+ Recent pos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