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희삼



02. 변태

인간의 생체 사이클에서 벗어난 삶을 살고 있다고는 해도, 소년의 일상에 크게 바뀐 것은 없었다. 병에 걸리기 전처럼 진선조의 대원들과 조를 이루어 순찰을 돌았고, 에도의 치안을 담당했다. 큰 사건이 있을 때면 철야에 찌들었고, 거대 범죄 조직을 상대할 때는 어김없이 팔이나 다리, 심하면 뱃가죽에 크고 작은 자상을 입었다. 그런 날에는 상처를 부여 쥐고 나을 때까지 내내 끙끙 앓아야 했다. 단지 그 끙끙 앓는 기간이 하루 밤이 전부라는 것이 조금 달라졌지만, 그래도 소년의 일상에 무엇 하나 바뀐 것은 없었다.


그 날도 그런 날이었다. 한 겨울 시린 바람을 맞으며 거리 순찰을 돌던 밤이었다. 소년의 담당 구역은 에도 내에서 문란하기로 치면 0순위인 가부키쵸 거리였다. 그런 구역의 순찰을 진선조의 가장 어린 대원이 맡는 다는 것은 모순이었지만 이상하게도 그런 것에 태클을 거는 사람은 한 사람도 없었다. 다들 이러니저러니 해도 기본적인 신뢰가 있다고 봐야할지 아니면 무책임하다고 해야할지. 어찌되었든 소년은 전자도 후자도 상관없었다. 다만 귀찮을 뿐이었으니까. 왜냐하면,


? 아저씨랑 좋은데 갈까?”

흐응, 얼마 줄건데요?”


저런 쓰레기 같은 것들을 상대해야 하니까.


소년은 작게 한숨을 쉬고 어두운 골목에서 흥정을 하고 있는 남녀를 향해 걸어갔다. 남자는 최소 20대 후반, 여자는 많이 봐야 십대 후반. 명백하게 미성년자 성매매였다. 아무리 썩을 대로 썩은 자신이라지만 일하는 중엔 공과 사를 명백하게 구분할 줄 안다. 소년은 어린 소녀를 어떻게든 꼬여내려고 애를 쓰는 남자의 어깨를 짚었다.


형씨, 웬만하면 좀 더 나이 있는 여자를 노리는 게 어때요? 양심이 있지 그런 핏덩이를 어떻게 해보려고 용쓰는 거 부끄럽지 않으십니까?”


소년은 영혼 없이 남자의 작업에 태클을 놓으며 하품을 했다. 그는 대충 벌금형이나 때리고 둔영으로 돌아가 따뜻한 아랫목에 몸이나 지지고 싶을 뿐이었다. 소년은 남자가 헛된 발악을 하지 않길 바라며 자신보다 키가 큰 미성년자 성매매범을 올려다보았다.


하얀 백발의 머리카락이 흔들리며 남자가 소년을 향해 돌아보자 그와 눈이 마주쳤다. 의욕이라곤 하나 없는 동태눈깔이 소년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싸늘한 적색의 홍채가 자신의 것과 같았다. 소년은 이상하게 남자의 눈에서 시선을 뗄 수가 없었다. 충격을 받은 것도 아닌데 숨이 가빠왔고, 마른침이 삼켜졌다. 남자가 짜증스럽게 제 어깨에 올려진 소년의 손을 쳐내며 말을 꺼낼 때 까지 소년은 그렇게 움직일 수 없었다


둘 다 성인이거든?”


소년은 남자의 말에 정신을 차렸다. 방금 그 느낌은 무엇이었을까? 다시 남자의 눈을 똑바로 마주하고 싶지 않았다. 소년은 주저하며 남자를 다시 올려다보았다. 그러나 아까와 같은 느낌은 들지 않았다. 소년은 남자의 뒤에 선 여자에게 시선을 돌렸다. 아무리 많이 봐도 십대 후반. 잘못 봤다고 지나치기엔 정도가 심하다.


저게 어딜 봐서 성인입니까? 이봐, 민증 까봐.”

귀여운 언니, 빨리 보여주고 우린 마저 할 일 하러 가자고.”


여자는 남자의 말에 안절부절 못했다. 난감한 표정의 여자를 보니 아무래도 나이를 속인 것 같았다. 그러나 다행인지 불행인지 몰라도 여자는 두뇌회전이 빨랐다. 이내 눈물을 글썽이며 소년을 애처롭게 쳐다보며 말했다.


도와주세요! 이 아저씨가 절 강제로, ..........”


여자의 말에 남자는 할 말을 잃고 굳어버렸고, 소년은 그럴 줄 알았다는 얼굴로 남자의 손목에 수갑을 채웠다. 또한 그는 남자의 탈주에 대비해 자신의 손목에 남은 수갑의 한 쪽을 채우는 것을 잊지 않았다.

 

 

 

 

긴토키씨는 진짜 억울하다니까?!!”

저한테 끌려가는 사람들 중 억울하지 않은 사람을 못 봤습니다. 걱정 마세요, 형씨. 인생의 대부분은 그렇게 억울하게 살아가는 거니까요.”

그거랑 이거는 다른 문제거든? 나는 진짜 그 요망한 미성년자 계집애한테 속아 넘어간 순진한 아저씨라니까?”

언제부터 순진하다는 형용사가 아저씨 앞에 붙었답니까? 순진하다는 형용사를 모욕하지 마십시오.”


백발의 남자는 발악을 하며 소년에게 한 쪽 팔목을 저당 잡힌 채 진선조 둔영까지 질질 끌려가는 중이었다. 원래대로라면 남자는 가차 없이 빽차에 태워져 진선조 둔영까지 빠르게 구금될 예정이었으나, 소년은 남자와 같은 또 다른 희생자를 내지 않기 위해 요망한 미성년자 계집애를 경찰차에 태워 집으로 보내는 데 써버렸다.


남자가 속았다는 것은 진즉에 알고 있었지만 일단은 현행범으로 잡힌지라, 귀찮았지만 형식적인 조사와 처벌이 필요했던 것이다. 남자가 조금만 얌전히 굴어준다면 초범인 점을 들어 대충 벌금형이나 때리고 말 예정이었지만 그런 소년의 마음을 알 리가 없는 남자는 바득바득 이를 갈며 뻗대는 중이었다. 소년보다 덩치가 좋은 남자가 길 한복판에서 걸음을 멈추고 뻗대기 시작하자 소년은 더 이상 남자를 끌고 앞으로 나아갈 수 없었다. 소년은 짜증스러운 얼굴로 남자를 돌아보며 나지막하게 말했다.


형씨, 얌전히만 따라오면 가볍게 벌금형으로 끝내 줄 테니 자발적으로 걸어서 좀 갑시다?”

? 가볍게 벌금형? 얼마 때릴건데? 얼마나 가볍게 끝내줄건데?”

사회봉사 60시간에 벌금 50만원. 초범인 점을 들어 이 정도로 끝내줄게요.”

아이고!!!! 동네 사람들아!!!!! 경찰이 생사람을 잡네, 잡아!!!!”

형씨......팔 아프거든요. 드러눕진 말죠?”

아이고, 긴토키씨는 억울해서 걸어갈 수가 없어요!!!”


아무래도 소년은 저가 일처리를 잘못했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와 동시에 소년은 땅에 완전히 드러누운 변태의 악력에 이끌려 함께 흙바닥에 주저앉았다. 덩치나 작았으면 한 대 쥐어 패서 들쳐 없고라도 갔을 테지만 불행하게도 변태는 덩치도, 힘도 소년보다 좋았다. 정답게 은팔찌를 한 쪽씩 나눠 차고 길바닥에 주저앉은 저와 변태의 꼴이 참으로 우습고 어이없었다. 소년은 짜증스럽게 남자의 멱살을 잡아끌어 말했다.


이봐요. 부끄럽지도 않......”


그러나 말을 잊지 못했다. 다시 마주한 그 발간 눈동자와 정면으로 마주한 순간 소년은 저가 하려단 말을 다 잊어버리고 말았다. 그리고 꼼짝없이 몸이 굳어버렸다. 남자의 멱살을 잡은 손이 조금씩 떨려오기 시작했다. 그러자 남자가 이상한 낌새를 눈치 채고 저를 천천히 위아래로 훑으며 관찰하기 시작했다.


소년은 마른침을 삼키며 입을 다물었다. 한순간 느낀 그것은 공포에 가까운 것이었다. 그러나 막연했음으로 무엇에 대한 것인지, 왜 그런 것인지 몰랐고, 그저 몸이 굳어버렸다고 밖에 표현할 수 없었다. 남자는 제 멱살을 쥔, 얕게 떨리는 소년의 손을 잡아 자신의 쪽으로 끌어당겼다. 그리고 손목에 코를 묻고 깊게 숨을 들이쉬었다. 소년은 남자의 기이한 행동에 힘이 들어가지 않는 팔에 억지로 힘을 주어 비틀었다. 놓아줄 것 같지 않았던 남자는 의외로 싱겁게 제 손목을 놓아주었다.


그러나 방심한 순간 남자의 손이 제 뒷목을 끌어 당겼고, 남자는 제 목에 얼굴을 파묻으며 깊게 숨을 들이마셨다. 소년은 남자의 당황스러운 행동에 어찌할 바를 모르고 그대로 굳어버렸다. 남자는 이내 킬킬거리며 낮게 웃었다. 그리고 소년의 귓가에 대고 나지막하게 속삭였다.


어디 종속 주제에 주인을 몰라보고 함부로 짖어? 당장 수갑 풀어.”

 

 

 


 

그러니까, 그 뒤로 어떻게 되었더라.


소년은 집무실에 앉아 생각에 잠겼다. 분명히 그 백발머리의 변태놈이 굉장히 재수 없는 말을 지껄이고 난 뒤부터 딱 다음 날 아침까지 아무것도 생각나지 않았다. 마치 기억에 하얀 페인트가 들이 부워진 것처럼 기억의 연속선에서 유일하게 딱 그때의 일만 기억나지 않는 것이었다. 종속 어쩌고, 하는 말을 하고 난 다음에 남자가 무어라 더 지껄이는 것 같았고 그 뒤로는 저가 남자에게 어떤 행동을 했고, 남자는 어떻게 수갑을 풀고 달아났는지 도무지 기억할 수가 없었다. 또 자신이 언제 둔영으로 돌아왔는지도 기억나지 않았다. 어떻게 이런 일이 있을 수가 있단 말인가. 소년은 손가락으로 느릿하게 책상을 두드리며 눈을 감았다. 이 찝찝한 일을 어떻게 그냥 넘길 수 있단 말인가. 게다가 소년은 그 변태놈에게 무언가 당했다라는 기분에 휩싸였기 때문에 더더욱 그 날의 공백을 기억하고 싶었다. 분명 그 변태놈이 제 손목과 목덜미에 코를 묻고 냄새를 맡은 다음 이상한 말을 지껄였는데, 도대체가 이런 식으로 기억이 통째로 없을 수가 있을까.


, 미치겠네. 진짜.”

내말이. 땡땡이를 밥 먹듯 치는 부하놈 때문에 내가 미치겠다, 진짜.”

놀랐잖아요. 인기척 좀 하시죠?”

뻔뻔한 것 봐라. 맞아야 정신을 차리지? 나와. 순찰 돌 시간이다.”

. 하느님- 히지카타는 왜 안 죽는걸까요? 그렇게나 골초인데. 제발 좀 데리고 가주세요.”


소년이 책상으로 고개를 처박으며 산뜻하게 히지카타를 저주했다. 그에 히지카타는 소년의 뒤통수를 쥐어박았다. 소년은 개의치 않고 책상에 처박은 고개를 들지 않았다. 사실 히지카타가 옆에서 뭐라고 짖어대던 지금의 소년에게는 중요한 것이 아니었다. 그날의 기억의 공백을 찾아 메꿔야했다. 술을 마신 것도 아닌데 기억의 일부분이 통째로 없어지다니. 치매가 걸린 게 아니라면 이것은 제법 심각한 문제였다. 그러기 위해선 역시 그 남자를 다시 만나야 할지도 몰랐다.


히지카타씨.”

?”

기억의 일부분이 통째로 날아가 본 적 있어요?”

술 마셨냐?”

“......말을 맙시다. 당신한테 뭔가를 기대한 내가 바보지.”

이게 진짜. 헛소리 하지 말고 당장 나와.”


히지카타가 한 번 더 소년의 머리를 쥐어박으며 잔소리했다. 소년은 짜증스럽게 남자의 손을 쳐내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러나 그 순간에도 소년의 머릿속은 온통 하얀 머리의 변태 생각으로 가득했다. 그 자를 찾아야한다고, 소년의 무의식은 말하고 있었다.





꼭 사람은 바쁠 때 덕뽕이 차오르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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