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념(邪念)



ㅈ.희삼

02.

소년의 사념은 그렇게 그를 잠식해가고 있었다. 노력한다고 해서 없어질 생각들이 아니었기에 소년은 구태여 긍정적인 생각들을 하려고 애쓰지 않았다. 그로 인해 제 감정과 생각들이 좀먹어갔지만 어쩔 수 없다고 여겼기 때문에 여전히 자신은 죽어 마땅한 사람이었다.


지금 소년의 앞에 앉은 남자는 그런 소년의 상태를 훑으며 떨떠름한 얼굴로 입을 열었다.


그런다고 삶이 유익해지겠냐?”

유익하진 않아도 꼴불견은 면하겠죠.”


소년은 남자의 시선이 제 속내를 훤히 들여다보고 있는 것 같아 배알이 꼴렸다. 아니, 훤히 들여다보고 있는 것 같은 게 아니라 이미 들켜버렸을지도 몰랐다. 남자는 제법 눈치가 빨랐으니까.


꼴에 체면 생각하기는.”

전 뭐 자존심도 없는 줄 아십니까?”

도대체 뭐가 그렇게 심각한데?

더 파고들지 마시고.”

, 인마. 지금 이 아저씨는 몹시 당황스러워요. ? 뜬금없이 마요네즈 귀신을 죽이고 싶다고 지껄이다, 사실은 본인이 죽었어야 한다느니! 아무리 긴토키씨가 유능한 해결사라도 좀 더 자세한 정보가 필요하거든?”


소년은 턱을 괴고 창밖을 보았다. 앞에 앉은 하얀 더벅머리의 남자가 질린다는 얼굴을 하고는 딸기 빙수를 퍼먹기 시작했다. 소년은 시큰둥한 얼굴로 남자를 곁눈질했다. 그러자 남자는 자그마한 티스푼을 탁, 소리가 나게 내려놓더니 성질을 냈다.


고따위로 사람 간 보지 말고 말을 해, 말을.”

후회 할 텐데?”

얼마 줄 건데? 후회는 금액에 따라 안 할 수도 있어.”

세상 사람들이 다 형씨 같으면 얼마나 행복할까요.”

방금 내 욕 한 거지? 싸우자는 거야?”

나랑 잘래요?”


멍청한 얼굴로 화를 내던 남자가 일순 입을 다물었다. 소년의 말을 끝으로 테이블에는 정적이 내려앉았다. 시끄러운 카페 안에서 소년과 남자가 앉은 테이블은 유난히 조용했다. 남자의 얼굴이 서서히 일그러지자 소년이 그럴 줄 알았다는 얼굴로 살풋 웃어보였다. 잠시나마 우울했던 기분이 가시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소년은 남자가 꽤나 마음에 들었다. 썩 유쾌한 남자라고는 할 수 없었지만 이렇듯 말을 섞으면 잠시나마 편했다. 제 말 한 마디, 한 마디에 신경을 곤두세워 마음이 세어나갈까 혹여 라도 알아채지 않을까 마음 졸이는 일 없이 제 마음이 내키는 대로 지껄일 수 있는 몇 안 되는 사람이 바로 남자였기 때문이었다. 소년은 새어나오는 웃음을 감추지 않으며 말했다.


말해보라면서요.”

발랑 까져 가지고...... 마요네즈 귀신은 애를 어떻게 교육 시키는 거야?”

그 재수 없는 인사 이야기는 하지 마시고.”

내가 이런 말 하는 것도 웃기지만, 참 세상 말세다.”

세상 말세에 돈이라도 벌어둬야죠. 안 그래요? 생각 있으면 연락하세요.”


소년은 천천히 일어서며 남자를 바라보았다. 멍청한 얼굴이 한 것 일그러져 저를 올려다보고 있었다. 그 시선의 끝자락에 아주 미미한 경멸이 담긴 것 같아 조금 속이 꼬였다. 소년은 보란 듯이 지갑에서 만 엔짜리 한 장을 꺼내 남자의 앞으로 내밀었다.


이건 오늘 수고비예요.”


소년은 경쾌한 발걸음으로 남자를 뒤로 하고 카페를 나섰다. 등 뒤에서 남자가 내뱉는 욕지거리가 들렸다. 묘하게 기분이 좋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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