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담(奇談)

 ㅈ.희삼

 

 

10. 양이지사, 사카타 긴토키

이건 불공평하다, 고 히지카타는 생각했다. 분명히 이쪽에서도 상당한 데미지를 줬다고 생각했는데 놈의 얼굴은 멀쩡했다. 저만 입가가 터져 볼썽사나운 꼴을 하고 앉아 있으니 그럴 만도 했다. 확실히 인간이 아니긴 아니었다. 남자는 불과 한 시간 전만 해도 제게 얻어맞아 얼굴 꼴이 엉망이었다. 바로 저처럼. 그런데 맞은 지 일 분도 되지 않아 멀쩡한 얼굴로 돌아와 버렸으니 히지카타로서는 참으로 분한 일이 아닐 수 없었다. 이럴 줄 알았으면 사정 봐주지 않고 검을 들고 설치는 게 나았다. 저런 괴물을 상대하는데 맨 주먹이라니, 자비가 넘쳐도 과하게 넘쳤던 것이었다.

 

이봐, 경찰 나으리. 지금 멀쩡한 내 꼴을 보고 검을 들고 설쳤어야 했다느니 하는 불순한 생각을 하고 있는 건 아니겠지? ? 내가 아무리 멀쩡해 보여도 말이야 아픈 건 다 똑같거든?”

 

재수 없는 새끼.

 

히지카타는 혀를 차며 짜증스럽게 얼굴을 구겼다. 과연 부하의 말대로 좁힐 수 없는 거리감이 피부에 와 닿았다. 이런 놈을 상대로 부하에게 구워삶아 보라느니 제대로 꼬드겨 보라느니 했던 제 자신이 조금 부끄러워진다. 아아, 나 진짜 못된 상사였구나. 히지카타는 제 옆에 앉아 코코아를 홀짝대고 있는 부하를 쳐다보았다. 맹한 얼굴을 하고 무언가 초탈한 듯 보이는 부하가 새삼 대견스럽다. 히지카타는 저도 모르게 부하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그러자 앞에 앉은 남자는 의심스러운 눈으로 히지카타를 훑어보았고, 소년은 토할 것 같은 표정으로 그를 올려다보았다. 히지카타는 민망함에 서둘러 손을 거두고 헛기침을 했다. 소년은 제 머리를 헝클어뜨리며 말했다.

 

그새 호모병이 옮기라도 했습니까? 전 사내연애는 안합니다.”

닥쳐, 그런 거 아니니까.”

“....뭐야, 이 병신들은....”

 

남자가 히지카타와 소년을 싸잡아 병신이라고 묶었다. 그에 소년은 주저 하지 않고 칼을 뽑아 들고 남자의 어깻죽지에 밖아 넣었다. 남자는 반사적으로 손을 들어 칼을 막았으나 칼에 무게를 실어 찔러오는 소년의 공격을 막을 수 없었다. 덕분에 남자는 손바닥과 어깻죽지가 동시에 뚫려버렸다. 그러나 웃기게도 소년의 공격에 당황한 것은 히지카타였다. 히지카타는 아연질색을 하며 소년의 행동에 경악했다.

 

미쳤냐, 자식아!!!”

아아, 이 남자는 이런 식으로 다뤄야 하거든요.”

 

소년의 말에 남자는 이죽대며 웃었다.

 

내가 성깔 있는 거 좋아한다는 말 새겨 들었구나?”

봤죠? 호모인걸로도 모자라 변태라고요. 나한테 되게 미안하지 않아요? 히지카타씨.”

 

히지카타는 토할 것 같은 표정을 남자와 소년을 번갈아보았다. 그리고 소년에게 진심을 담아 사과했다.

 

소고......미안하다.”

 

그는 정말로 진심이었다.

 

 

 

**

 

 

 

협조를 가장한 심문과도 같았던 시간이 해결사 사무실을 들쑤시고 난 뒤, 히지카타는 야마자키에게서 온 전화를 받고 뛰어나갔고 소년은 소파에 지친 듯 몸을 파묻었다. 남자는 아무렇지 않게 냉장고에서 수혈팩을 꺼내 빨대를 꽂았다. 보약에 빨대를 꽂아 먹는 것과 같은 모양새가 아무래도 웃겼다. 소년은 그런 남자의 모습을 보며 실소를 터뜨렸다.

 

이렇게 보면 그냥 진짜 동네 백수 같은데 말이죠.”

백수라니 자식아. 엄연히 해결사라는 직업이 있으신 몸이다.”

그게 그거잖습니까. 손님이라곤 나나 히지카타씨가 전분데. 그것도 약점 잡혀서 하는 무보수 노동.”

협조라는 아름다운 말 뒀다 뭐하냐? 그리고 약점 잡힌 걸로 치면 너만큼 잡힌 거 아닐 텐데. 우린 서로의 약점을 공유한, 뭐 그런 사이니까. 네 상관은 아직 모르는 눈치던데? 너랑 내가 잤다는 거.”

와 그게 잤다는 말로 마무리가 되는 겁니? 강간 아니고?”

그럼 한 번 더 해볼래? 오빠가 천국 보내줄게, 급행으로.”

형씨야말로 천국 가고 싶나 봐요, 급행으로. 뭐하면 여기서 보내드릴 수 있는데 말이죠. 목이 잘려도 그 주둥아린 계속 나불거릴 수 있답니까?”

나한테 아직 협조 받을 거 많지 않냐, 너네?”

 

소년은 진지하게 경찰 일을 때려치우고 여기서 저 자를 죽이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저야 아직 앞길 창창한 십대이고, 인간도 아닌 저딴 변태 흡혈귀 한 마리쯤 죽인다고 해서 제 창창한 앞길이 어두워지진 않을 것도 같았다. 문제는 변태를 어떻게 죽이느냐 였다. 일반적인 상해는 금세 다시 회복되어 버리니 소용없는 짓이었다. 정말로 목을 베어버려야 하나? 그러나 저 귀신같은 변태의 반사 신경과 움직임은 인간인 저로는 따라갈 수 없었다. 노린다고 해도 방심했을 때 일격에 끝내야할 문제였다. 소년은 맹한 얼굴로 남자를 뚫어져라 쳐다보며 살벌한 생각을 해댔다. 그런 소년을 바라보던 남자는 왠지 오한이 들어 기분이 꺼림칙했다.

 

뭐야? 왜 그따위로 쳐다봐?”

형씨는 어떻게 하면 죽습니까?”

“......가르쳐 주겠냐.”

 

남자가 어이없는 얼굴로 소년에게 말했다. 뻔하지 않아서 귀엽긴 한데 이렇게나 단도직입적으로 살의를 들어낸다. 이래서 어린 애는 무섭다. 제 감정을 숨기지 않고 저렇듯 당당할 수 있으니까.

 

재밌는 이야기 해드릴까요?”

?”

궁지에 몰린 쥐새끼 이야긴데요.”

“......누가 쥔데?”

어느 멍청한 양이지사요.”

?”

전쟁 때 양이지사들이 열세였거든요. 정부도 외면해버려서. 그런데 이상하게도 하는 전투마다 승리를 하는 집단이 있었어요. 광란의 귀공자, 카츠라 코타로 아시죠? 그 유명한 지명수배자도 그 집단에서 양이활동을 했었어요.”

 

소년은 말을 이어가며 남자를 주시했다. 어느새 남자는 지루하다는 얼굴로 수혈 팩에 남은 피를 털어 마시고 있었다. 그러나 미묘하게 얼굴이 굳어있다는 느낌을 받았다.

 

재미없어.”

한 명 더 있어요. 유명한 사람. 하얀 머리를 한, 귀신같은 검을 쓰는 백야차.”

 

남자는 무신경한 얼굴로 다 마셔버린 수혈 팩을 쓰레기통으로 던져 넣었다. 그리고는 입이 찢어져라 하품을 하며 소파로 돌아와 길게 누웠다. 소년은 그런 남자의 반응에 아랑곳하지 않았다.

 

궁지에 몰린 쥐새끼가 바로 그 백야차의 이야기예요.”

그런 바보 이야기엔 흥미 없어.”

동료들이 전쟁에 지쳐서 하나둘씩 다 떠나버렸데요. 그쯤해서 정부도 다른 양이지사들도 침략자들도 협정을 맺고 지금과 같은 상황이 만들어지고 있었어요. 백야차는 완전히 궁지에 몰려버린 상황인거죠. 그 궁지에 몰린 쥐새끼가 무슨 일을 벌인 줄 아세요?”

적장의 목을 따버렸지. 혼자 적함에 침투해서.”

“......”

 

소년은 이상하다고 생각했다. 죽여 버리겠다고 협박이나 해두자는 차원에서 꺼낸 백야차의 이야기는 남자를 점점 더 가라앉게 만들고 있었다. 무신경한 얼굴을 하고 있는 남자였지만 소년은 남자가 기분이 더러워졌다고 느꼈다. 궁지에 몰린 백야차는 적장을 죽여 버렸다, 이건 쥐가 궁지에 몰려 고양이를 물고 뜯어 죽여 버린거다. 그러니까 댁도 조심해라. 내가 좀 사나운 쥐새끼니까, 하고 아름답게 이야기를 마무리 지으려 했었다. 그런데 남자의 저 반응은 이상했다. 게다가 더 이상한 점은,

 

형씨, 이상하네요. 별 것도 아닌 이야기를 들으면서 되게 기분 나빠하네.”

지루한 옛날이야기는 싫어.”

그게 그렇게 기분 나빠할 정도로 싫은가?”

“......”

근데 형씨, 더 이상한 게 뭔지 알아요?”

.”

형씨가 어째서 백야차가 적장의 목을 따버렸단 사실을 알고 계시는데요? 그건 국가 기밀인데.”

 

어째서 남자가 국가기밀을 아무렇지 않게 떠들었는가.

 

소년은 검을 빼어들며 웃었다. 그리고 남자를 향해 검을 겨누었다. 남자는 짜증난다는 얼굴로 소년을 노려보았다.

 

당신 뭐야, 도대체.”

 

소년이 물었다.

 

“......”

 

남자는 말없이 소파에서 일어났다. 그리고는 소년을 향해 터벅터벅 걸었다. 소년이 단단히 잡아 쥔 검에 남자의 가슴께가 닿았다. 남자는 물러설 생각이 없어보였다. 소년은 웃음을 거두고 다시 남자를 향해 물었다.

 

도대체 정체가 뭐야, 이 망할 변태새끼야.”

 

소년의 말에 남자가 피식, 웃음을 흘렸다. 남자는 소년의 검을 잡아 쥐고 그대로 한 걸음 더 소년에게 다가갔다. 그러자 남자의 몸이 검에 관통당하면서 옷이 발갛게 물들었다. 남자는 소년에게 다가가는 것을 멈추지 않았다. 그는 소년의 코앞까지 와서야 걸음을 멈추었다. 그리고 소년의 귓가에 대고 나지막하게 중얼거렸다.

 

양이지사, 사카타 긴토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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