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련 외전

 

w.희삼

 

 

 

 

사람은 누구나 자신이 처한 현실에 익숙해지기 마련이다. 지독하게 슬픈 일을 겪었어도 도무지 이해가 가지 않는 일을 당했어도, 언젠가는 당연하다는 듯 그 부당한 현실을 이내 받아들이게 되어있다. 지금까지의 모든 일들이 그래왔다. 힘든 일이든 슬픈 일이든 조금만 더 견디면, 조금만 더 시간이 지나면 이내 자신의 몸 일부분처럼 익숙해져 있어, 상처가 아프지 않게 되어버린다. 상처가 나아서 아프지 않은 것이 아니었다. 단지 그 아픔이 익숙해져 아프지 않다고 착각해 버리는 것일 뿐이다. 하지만 괜찮았다. 아프지 않아. 슬프지 않아. 이렇게 생각할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인간은 대부분 만족해버리니까.

 

그런데 어디서부터 잘못되어 버린 걸까. 심장 한구석에 가시가 박혀 숨을 쉴 때마다 고통스럽게 폐부를 짓눌러온다. 익숙해질 때도 되었건만 시간이 지날수록 선명해지는 그날의 기억은 도저히 익숙해지지 않는다. 그 기억이 심장에 말뚝처럼 박혀 피가 솟아나지도 못하게끔 만들어 죽을 만큼 괴롭지만 죽을 수 없게 만든다. 도대체 그 기억, 그 사내가 무엇이건데 자신을 이토록 흔들어 놓는 것인지, 그 이유를 생각하는 것조차 멈추어 버렸다고 생각했다.

 

도저히 익숙해지지 않는 그 고통이 절정에 달했을 때, 참지 못하고 울음이 터질 것이라고 생각했지만 막연하게 웃음이 나왔다. 이유는 역시, 알 수가 없었다.

 

 

 

**

 

시련은 있어도 휴일은 없다. 경찰 일이라는 게 그런 것이란다. 적당한 때가 되면 돌아오는 비번은 왜 이렇게 멀게만 느껴지는 것인지. 정작 사람이 쉬고 싶을 땐 모든 것이 바쁘게만 돌아간다. 덧붙여 저만 빼고 모두들 행복해 보이니 더 할 말이 없다. 세상에 불행한 것은 저 혼자라고 땅을 파도 10m는 팠겠다 싶을 정도로 우울했지만 내색을 할 수는 없었다. 그런 것은 저와 어울리지 않다고 생각했기도 했고 또 정말로 찌질해져 버릴 것 같아 차마 그런 짓을 대놓고 할 용기는 없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우울을 모르는 것은 아니다. 더러는 저를 보고 피도 눈물도 없다고 하고 더러는 독한 새끼라고 욕을 하기도 했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저를 모르니 할 수 있는 소리였다. 마음을 꽁꽁 감추고 숨기는데 익숙할 뿐이지 시련에 익숙한 사람은 없으니까.

 

“......쉬고 싶다.”

평소처럼 땡땡이를 치지 그래?”

“!!!”

 

. 진짜 놀랐어. 진짜 심장이 입 밖으로 튀어나오는 줄 알았어.

 

스쳐지나가 듯 무심한 목소리가 온 신경을 곤두서게 만들었다. 얼마나 놀랐던지 목소리가 들리는 방향으로 고개조차 돌릴 수 없을 정도로 뻣뻣하게 굳어버렸다. 그 모습이 얼마나 웃기게 보였을까. 하는 생각 따위를 할 여유도 없었다.

 

하는 일이라고는 없는 이 백수 비슷한 남자가 사람을 들었다 놨다 한다. 아무렇지 않은 얼굴을 하고 태평한 목소리로 저를 흔든다. 언제나 그렇듯 이 남자는 고요하다. 늘 불안하고 잔가지가 바람에 성퀴어 조용할 날 없는 제 속과는 천차만별이다. 부럽다면 부럽고, 또 대단하다면 참 대단하다.

 

이 남자는 그날의 일을 없었던 일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그저 숨을 쉬 듯, 밥을 먹 듯, 길거리를 걷다 아는 사람을 만나 인사를 하 듯, 아주 평범한 일상의 한 부분으로 여길 뿐이었다. 그것이 아니라면 그 평범한 일상 속에 누구나 한 번쯤은 시도할만한 일탈, 그 정도로 여기고 있음이 분명했다. 그러지 않고서야 저렇게 태평하게 저에게 말을 걸 수 있을 리가 없다.

 

조금은 억울했다. 저는 숨 쉬는 것조차 편하지 않아 숨이 막혀오는데 정작 상대방은 아무렇지도 않다. 당연히 그럴 것이라고는 예상했지만 막상 현실로 닥치니 상상했던 것 보다 조금 더 불쾌했다.

 

다음에 또 보자.’

 

이따위 말을 지껄일 때부터 이렇게 되리라는 것은 뻔 한 일이었을지도 모른다. 아직도 저 말의 뜻을 정확히는 모르겠지만 어쨌든 저가 서운한 감정을 가지게 될 뜻임에는 변함이 없을 것이다.

 

귀신이라도 봤냐? 왜 이렇게 굳었어?”

, ...... 놀라서.”

 

멍청하게 입만 뻐끔거리지 않았나, 스스로의 행동을 곱씹으며 남자를 바라보았다. 바람에 나부끼는 하얀 머리칼이 아슬아슬하게 남자의 뺨을 간질인다. 남자는 귀찮다는 듯 머리를 쓸어 넘기고 있었다. 바로 저런 것일 것 같다. 남자에게 있어 저라는 존재는 뺨을 간질이는 귀찮은 머리카락 같은 그런 존재가 아닐까. 갑작스레 든 생각에 다시 한 발 물러서게 된다. 귀찮게 하지 말아야지. 순결을 뺏긴 처녀애처럼 굴지 말아야지. , 순결을 뺏긴 건 맞는 말이지만 어쨌든.

 

스스로를 우울로 몰아넣는 생각에 잠겨 갈 때쯤 남자가 말을 걸었다. 언제나 그렇듯 제 이름을 제대로 부르지는 않았다.

 

소이치로군.”

소고입니다.”

돈 없고 가난한 불쌍한 시민에게 딸기우유 하나만 사주면 안 될까?”

 

저 말을 듣는 순간 진심으로 남자를 죽여 버려도 괜찮지 않을까, 그런 생각을 했다.

 

*

 

근래에는 좀처럼 일이 들어오지 않아 말 그대로 진짜 백수 같은 생활을 하고 있었다. 아침에 눈을 뜨면 TV를 보며 뒹굴 거리다가 집안에 식충병이 걸린 계집애의 닦달에 못 이겨 장을 보러 나왔다 딴 길로 새어 파칭코를 하다 그러다 돈이 떨어지면 주변을 어슬렁거리다 집으로 돌아가곤 했다.

 

슬슬 이런 생활이 지겨워 질 때쯤 우연히 소년을 발견했다. 여전히 무신경한 얼굴을 하고는 거리를 걷고 있었다. 제복을 입고 있으니 순찰을 나온 모양인데, 거리의 사건과 사고는 애당초 신경도 쓰지 않고 있었다. 그 모습이 참으로 소년다워 공무원의 나태함이 당연하게 느껴졌다. 아아, 저런 것이 세금 도둑이지, 그래. 와 같은 당연하지 않은 생각을 당연하게 만들어 버리는 소년의 존재는 제 안에서 크다면 큰 존재였고 작다면 작은 존재였다.

 

저가 좋다고 그렇게 쫓아다니더니 그 날 이후로 한 방에 나가떨어졌다. 아니, 이런 표현 보다는 가차 없이 이쪽을 떠나버렸다는 표현이 더 옳을 것이다. 사실은 저게 몸만 원했다거나 하는 생각을 해보지 않은 것은 아니나 그렇다고 치기에는 그 순수한 질투가 퍽이나 진심으로 느껴졌던 것이 사실이다. 게다가 저가 뱉었던 말 한마디, 한마디에 상처받은 얼굴을 하고는 시선을 외면하던 그 모습. 그것은 진심을 숨기기 위한 외면이었을까, 거짓을 들키지 않으려는 위장이었을까. 사실 그 어느 것도 중요하지 않았다. 중요한 것은 자신의 마음이었다.

 

그날 이후로 소년은 제 안에서 특별해졌다. 그 일이 있기 전에는 오다가다 인사를 하는 사이, 가끔가다 일로 얽히는 사이, 또 저가 좋다고 말해준 이상한 꼬마. 그 이상의 의미는 없었다. 그러나 절대로 기억에서 지울 수 없었던 그 일이 있고 난 이후로 소년은 뭐라 정의할 수 없는 존재가 되어버린 것이다. 그러니까 말 그대로 크다면 크고 작다면 작은 의미의 존재랄까. 하여튼 그런 것이었다.

 

고작 딸기 우유를 고르는 데에도 그렇게 신중해야 합니까?”

제품마다 특유의 맛이 있단 말이다. 이 아저씨는 섬세한 미각을 가졌단 말이지.”

그냥 아무거나 처 드세요. 얻어먹는 주제에 꼴값은.”

너 말이야, 얼굴은 무지하게 상큼한 주제에 말이 너무 따가운 거 아니냐?”

 

좋아한다고 저에게 매달리던 귀여운 소년은 어디로 간 걸까. 마음에 겨울이라도 온 모양인지 쌀쌀한 태도에 절로 인상이 쓰였다. 아니, 저게 진짜 몸만 원했다거나. 생각이 어두운 데로 튀자 점점 더 기분이 더러워졌다.

 

대꾸가 없는 소년을 슬쩍 노려보고는 앞에 놓인 딸기우유들을 제품별로 쓸어 담았다. 그러자 소년이 인상을 쓰며 저를 쳐다본다. 양심도 없냐고 말하고 싶은 모양이었으나 이쪽도 나름대로 기분이 상했다면 상해버렸다.

 

가끔 말인데요, 형씨 정말로 사람 열 받게 만드는 거 아십니까?”

? ? , . 이것 보셔, 경찰나리. 그 말 그대로 되돌려주고 싶은데?”

형씨가 진즉에 양심에 털 난 사람인 줄은 알고 있었어요. 그런데 좀 심하다는 생각 안하십니까?”

?! 소이치로군? 이건 아니지. 어째서 내가 그런 소릴 들어야 하는데? 고작 이 딸기우유 몇 개를 가지고 내가 왜 소이치로군 같은 무 개념 미성년자한테 그런 소릴 들어야 하는 걸까? ?!”

저는 이 상황 자체가 말이 안 된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만.”

 

조곤조곤하게 말대꾸를 해오는 소년덕분에 혈압이 수직상승을 하고 말았다. 얄밉다, 얄밉다 했지만 오늘처럼 얄미운 적은 또 처음이다. 특히나 저 특유의 무표정은 정말 참기가 힘들다.

 

너 진짜 성격 안 좋다고 내가 말 했던가?”

그러는 형씨야 말로 어린애를 갖고 노는 취미가 참 고약하다고 생각하지 않습니까?”

? 이건 또 무슨 소리랍니까? ? 뭘 가지고 놀아요? 누가, 누굴?! 생각할수록 열 받네. 가지고 논 건 오히려 네 쪽 아니냐?!”

 

그렇게 애달프게 매달렸으면서 이런 것은 반칙이라고 생각했다. 분명 좋았다고 이야기 했으면서 그날 이후로 코빼기도 내비치지 않았다. 기다리면 뒤에서 쫓아오겠지, 라고 여겼지만 소년은 그러지 않았다. 이때까지 질기게도 쫓아다녔던 주제에.

 

소년의 감정을 이용한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악의는 없었다. 밀고 당기는 것에 익숙하지 않아 말하지 못했을 뿐이다. 그리고-

 

화대로 딸기 우유 몇 개는 싼 거 아닌가? 특별고객이라 할인 많이 해준 건데.”

...... 지금 뭐라고-”

 

가졌다고 생각했는데, 그러지 못해 화가 났을 뿐이다.

 

하나에 한 번이야. 다섯 개를 담았으니 네 번은 너랑 더 놀아줄 의향이 있단 소리지.”

 

소년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기가 막힌다는 표정인데 왜 저런 표정을 저가 하고 있는지 모르겠다. 진짜로 기가 막힌 게 누군데.

 

손님 하나 없는 편의점에 정적이 내려앉았다. 소년이 도저히 이해할 수 없다는 얼굴로 저를 쳐다보고 있었다. 그러나 그런 소년의 작태를 이해할 수 없었던 것은 오히려 저였다. 도대체 왜 저런 얼굴을 하고 바라보는 것일까. 태연하게 웃고 있었지만 속이 꼬여 여간 불쾌한 것이 아니었다. 그러니까 도대체 네가 왜.

 

형씨, 도대체...... 무슨 말을......”

 

*

 

살다 살다 별 거지같은 치정싸움을 다 본다고, 편의점의 아르바이트생은 생각했다.

 

여느 때와 같이 카운터에 앉아 꾸벅꾸벅 졸고 있었다. 그 틈에 들어온 모양인지 웬 어린 경찰 하나와 눈에 익은 백발의 남자가 저도 모르는 사이에 유제품 코너 앞에서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처음에는 도란도란 사이좋게 몇 마디를 주고받더니 이상하게 점점 소리가 커져 본의 아니게 하는 이야기를 엿듣게(?) 되버렸다. 덕분에 살아생전에 두 번은 보기 힘들다는 게이 치정싸움의 현장을 두 눈으로 목격하고 있는 중이다. 말려하나 말아야하나, 아니 말리러 가기도 뭣한 이 상황에서 제발 편의점 안에서 사고만 치지 말아달라고, 아르바이트생은 간절하게 기도하고 있었다.

 

내 감정을 알고도 나랑 잤잖아요! 그런 주제에 왜 형씨가 그런 말을 합니까?”

? 말 한 번 잘했다. 너 인마, 좋다고 그렇게 쫓아다니더니 한 번 자고 나니, ? 별로라서 다시 만날 생각이 안 들더냐?! 이 아저씨도 섬세한 감정을 가지고 있거든? 유리 같은 마음의 소유자거든? 쪼끄만 게 어른을 가지고 놀고 말이야, 마요네즈 부장이 그러면 안 된다고 안 가르쳐주든?!”

형씨야말로 날 창부 취급 했잖아요! 한 번 자고 말, 그런 상대로 여기고 있잖아요!”

이게 진짜 상큼한 얼굴을 하고 못하는 말이 없네. 내가 언제 그랬어?! 나도 좋았다고 이야기 했잖아!!!”

 

.......저것들 진짜 뭐야?

 

 

**

 

 

팔목을 붙잡혀 끌려나오다시피 편의점을 벗어났다. 붙잡힌 팔목에서 그날과 같은 열감이 느껴졌다고 하면 진짜 미쳐버린 걸까. 소년은 스스로가 한심해 정말로 돌아버릴 지경이었다. 결국은 그런 취급을 받아버렸다고 생각했으면서 아니라고 바락바락 소리를 지르는 남자의 행동에 다시 무너지고 말았다. 일부러 쫓아가지 않은 게 아니었어요. 라고 말하고 싶었지만 입이 제대로 떨어지지 않아 그러지 못했다. 날 봐주지 않아서 그랬다고, 사실대로 말했어야 했나. 소년은 복잡한 심경에 숨이 막혀왔다.

 

남자도 마찬가지였다. 소년이 그렇게까지 상처받았을 줄은 몰랐다. 저가 소년을 창부 취급 하고 있다고 생각하고 있을 줄은 정말 꿈에서도 상상하지 못했다. 귀여운 얼굴을 한 주제에 생각하는 것은 어찌나 섬뜩한지, 참 그것도 재주라면 재주다.

 

돌이켜보면 확실히 오해할만한 행동이었다. 정신없이 일그러진 소년의 얼굴이 좋아 그것을 탐하다보니 제대로 말해주지 못했다. 쾌락에 울면서 떨고 있는 저 어린 소년에게 취해 병신같이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고 생각하니 스스로도 기가 막힌다. 이렇게 돌이켜보니 죄다 저가 잘못한 것 같아 속이 매스꺼워진다. 그렇지만 완전히 이쪽의 잘못이라고 하기엔 억울한 감이 있다. 소년도 제대로 행동하지 않았으니 이것은 명백한 쌍방과실이다.

 

좀 놔요. 아파요.”

 

소년의 말에 남자가 붙잡고 있던 팔을 놓았다. 남자는 놓은 손이 머쓱해져 습관처럼 뒤통수를 긁적였다. 무작정 끌고 나오긴 했는데 저도 이제 할 말이 없어진 모양인지 남자는 한참동안 말이 없었다. 소년은 남자의 침묵을 더 견디지 못하고 이내 먼저 말을 걸었다.

 

어른이 되가지고 먼저 사과하는 것도 못합니까?”

나만 잘못했냐?”

좀스럽긴.”

이게 진짜! , - 내가 잘못했다. 됐냐?!”

전 사과 안할래요. 아무래도 좀 억울하니까.”

!!!”

 

성격한번 아름답네. 남자는 하고 싶은 말을 삼키며 소년을 내려다보았다. 꼬마는 치고 올라왔던 감정이 한풀 꺾인 모양인지 시선을 아래로 향하고 있었다. 속눈썹 사이사이로 흐릿하게 비치는 새빨간 눈동자가 보였다. 남자는 내리 깐 눈두덩이 위로 옅게 보이는 쌍꺼풀 자국 위로 혀를 대고 맛보고 싶어졌다. 그런 남자의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소년은 계속해서 땅바닥만을 주시할 뿐이었다. 이쪽을 좀 봐. 빌어먹게 애 좀 그만 태우고. 속에서 치미는 열 덩어리 같은 말을 겨우 억눌러 삼키고는 소년의 턱을 잡아 올렸다.

 

너 진짜 성격 안 좋아.”

그러는 형씨는 얼마나 좋다고 그런답니까. 어린 애를 상대로 화대가 어쩌고 한 거 부끄럽지도 않으세요?”

, 말 나온 김에 딸기 우유 하나에 사랑과 섹스 한 세트. 어때?”

 

, 얼굴 빨개졌다.

 

민망한 듯 눈알을 굴리며 저를 외면하는 소년의 입술에 남자는 무작정 입술을 갖다 대었다. 완전히 충동적인 행동이었지만 남자는 후회하지 않았다. 닿아있는 입술에서 달달한 사탕 냄새가 났다. 할짝여 맛을 보면 정말로 단 맛이 날 것 같았다. 그런 소년의, 놀라서 동그랗게 뜬 눈이 초점이 맞춰지지 않는 시야 사이로 흐릿하게 보였다. 그 얼굴이 다시 한 번 남자의 억눌린 욕망을 일깨우고 있었다.

 

죄 많은 남자야, 오키타군은.”

......”

한 번 더 나랑 놀아줘, 오키타군.”

, -”

 

소년이 곤란한 얼굴로 말을 더듬었다. 시선을 피하며 울 것 같은 얼굴을 하고 있었다. 또 뭐가 마음에 들지 않는 거야? 남자는 속에서부터 끓어오르는 짜증을 애써 눌러 삼키며 참을성 있게 소년의 말을 기다렸다.

 

딸기우유, 안 사줄 겁니다.”

 

소년이 힘들게 떨리는 목소리를 진정시켜가며 말했다. 울 것 같은 얼굴을 한 주제에 제법 강단 있게 말하는 모양새가 퍽이나 진지해서 남자는 되레 웃음이 나올 것 같았다.

 

남자는 가슴이 떨릴 정도로 솔직하게 말하는 소년이 좋았다. 이렇게 숨기지 않고 자신을 제대로 봐 달라고 요구하는 소년이, 자신에게는 없는 용기를 가진 이 꼬마가 참 부러웠다. 비겁하게 입 밖으로 속마음도 꺼내지 못하는 병신 같은 저보다 백배는 더 기특해서 입가에 웃음이 멈춰지지 않았다. 그래서 저는 조금 더 비겁해도 되지 않을까, 나약한 생각을 해본다.

 

그러니까, 오키타군.

네가 좀 더 그렇게 귀엽게 굴어줘.

 

그러면 더 좋고.”

 

EN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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