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요즘 애들

2.요즘 어른

 

 

 

w.희삼

  

 

 

언제부터였는지 모른다. 수박같이 맨질맨질한 머리통이 묘하게 눈에 밟혔다. 무표정한 얼굴에 정 떨어지는 목소리를 가진 소년은 ‘형씨, 형씨.’ 하며 참 잘도 저를 따랐더랬다. 가끔씩 해결사 사무실에 들려 기특하게도 타바스코 토핑을 한 조각 케이크를 주고 갈 때도 있었다. 바로 오늘처럼.

 

귀염성 있게 생긴 낯짝이 보기 좋게 우거지상이다. 왜 저런 얼굴을 하고 있는지는 별로 알고 싶지 않았다. 소년이 이곳에 온 것이 더 중요했으니까. 습관적으로 뒷머리를 벅벅 긁으며 소년을 바라보았다. 잔뜩 일그러진 얼굴이 사람을 설레게 만든다. 도대체 누가 요 꼬마에게 이런 표정을 짓게 만들었을까. 새삼 그 사람이 고마워진다. 이런 좋은 구경을 할 수 있게 해주다니. 코를 후비며 소파에 길게 드러눕자 그제야 소년이 입을 열었다.

 

“어미 잃은 개새끼 보듯 보잖아요. 짜증나게.”

 

소년이 뜬금없이 화가 난 목소리로 말을 했다. 무슨 소린가 싶어 한 손으로 머리를 괴고 멀뚱히 소년을 쳐다보았다. 그러자 소년이 다시 입을 다물었다. 괜한 말을 했다는 얼굴이다. 그 모습이 재미있어 피식거리며 웃자 소년이 골이 났는지 옆에 놓인 칼을 집어 들고 냉큼 일어선다.

 

“가 볼게요.”

“누가 널 그렇게 봤는지 이야기 안 해 줄 거야?”

“알 거 없어요.”

 

냉정하게 말을 끊은 소년이 저를 돌아보며 귀엽게 웃었다.

 

“다음에 또 올게요.”

 

기가차서 허, 하고 맥 빠진 웃음소리를 냈다. 하여간 요새 애들은 버릇이 없다.

 

 

**

 

 

그렇게 삐져서 나가더니 일주일이 채 안돼서 또 사무실로 케이크를 사들고 왔다. 속을 알 수 없는 꼬마가 오늘따라 유난히 들떠 보이는 이유가 뭘까. 평소 같았으면 관심도 없었을 소년의 기분 상태가 왜 궁금한 건지 스스로도 의문이 생겼지만 앞에 놓인 달달한 케이크가 사소한 궁금증을 깨끗하게 날려버린다. 이번엔 타바스코 토핑을 하지 않았단다.

 

단내가 코를 찌르자 참을 수가 없어져 한 입 먹어보니 정말로 타바스코 토핑을 하지 않았다. 소년이 가끔 착한 짓을 할 때도 있구나 싶어 사랑스럽다는 듯 쳐다보았다. 그러자 소년이 인상을 쓴다. 귀염성 없기는.

 

“뭘 그렇게 느끼하게 본답니까?”

“귀염성 없는 자식.”

“형씨한테 귀여워 보여서 뭐 얻는 거라도 있답니까?”

“혹시 아냐? 이 긴토키씨가 오키타군에게 무한한 사랑을 줄지.”

“필요 없는데요.”

“......”

 

따박따박 말대꾸를 해오는 꼴을 보니 오늘은 확실히 기분이 좋은가보다. 케이크를 흡입하며 힐긋 소년을 쳐다보았다. 눈을 마주쳤더니 묘한 미소를 짓는다. 저게 오늘 약을 먹었나보다. 왜 저렇게 살 떨리게 웃는 걸까. 소년에게 신경을 끄고 남은 케이크를 쓸어 입에다 밀어 넣었다. 간만에 섭취하는 당분에 희열을 느끼며 포크를 내려놓았다. 저가 케이크를 다 먹은 것을 보더니 소년이 기다렸다는 듯 입을 열었다.

 

“히지카타씨가 오늘 뭐라고 했는지 알아요?”

 

하여간 뜬금없다. 그 니코틴 중독 마요네즈 귀신이 소년에게 무슨 말을 했든 하나도 궁금하지 않았다. 뭐 대단한 말이라도 나올 줄 알았건만 영양가 없는 소재에 맥이 빠진다. 흥미 없다는 표정으로 소년을 쳐다보았지만 이쪽의 관심사는 알바 아니라는 듯 재잘재잘 제 할 말만 해댄다.

 

“글쎄 나를 좋아한데요. 하핫, 이 사람 진짜 미친 거 맞죠?”

“아아, 그러셨어요.”

“어라, 뭐야? 형씨, 재미없어요?”

“빤히 보이는 사실을 이제 와서 새삼.”

“...그랬어요?”

 

결국 그 니코틴 중독자가 일을 냈구나 싶었다. 처음엔 납득이 가질 않았다. 위계질서가 생명이라는 곳에서 틈만 나면 상관을 향해 죽어라 엿을 먹이는 부하를 대수롭지 않게 여기는 상관이나, 고릴라 대장에겐 깍듯이 대장 대우를 해주면서 유독 또 다른 제 상관에게는 까칠하게 구는 부하를 이해할 수가 없었다. 저 정도면 버릇이 없는 것도 문제지만 어리광을 받아주는 쪽도 문제가 아닌가 싶어 절로 인상이 써졌다. 그러다가 어느 날, 상관이라는 자의 도를 넘은 이해심이 이해가 되었다. 자신과 똑같은 눈으로 소년을 보고 있던 니코틴 중독, 마요네즈 귀신은 단순한 정이라던가 좋아했던 여자의 동생이라서 아끼는 그런 것과는 다른, 조금은 위험한 마음으로 소년을 바라보고 있었다. 바로 자신처럼.

 

이미 알고 있던 일이었지만 소년의 입으로 들으니 더 맥이 빠진다. 하여간 성격은 급해서 선수를 치는 것도 그 사내 다웠다. 소년이 여기 와서 이러고 있는걸 보면 아마 만족스러운 대답을 해주지 않았거나, 답을 하지 않고 도망쳤거나 둘 중 하나일 텐데. 슬쩍 소년의 얼굴을 보니 들떠있던 표정은 어딜 가고 차분하게 눈을 깔고 멍하니 테이블만 바라보고 있다. 아무래도 후자의 경우인 것 같다. 그럼 그렇지. 도를 넘게 어리광을 부릴 때 알아봤어야 했다. 소년은 아무래도 흔들리고 있는 것 같았다.

 

“마요네즈 귀신이 자기 애라도 낳아 달래냐?”

“...뭡니까, 그 저질스런 예측은.”

 

소년은 어이없다는 표정으로 자신을 바라보았다.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소년을 쳐다보자 이내 말뜻을 알아들었는지 시선을 돌린다. 눈치는 빠른 편인데 정말 몰랐을까, 그 남자의 마음을.

 

“아는 사람이 왜이래요.”

 

알고 있다. 소년은 절대로 그 남자에게 가지 못한다. 누나의 존재가 처음부터 없었다면 모를까, 아무리 죽은 누이라지만 절대로 소년은 남자를 마음에 두지 못할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그 사내가 소년을 마음에 두었다 해도 이쪽은 여유가 넘친다. 발버둥 쳐봤자 안될 게 뻔히 보이는 상황에서, 저는 이렇게 소년이 자신에게 기댈 수밖에 없다는 것을 너무나도 잘 알고 있었다. 그 사내의 마음이든 소년의 마음이든 그런 것은 중요하지 않았다. 지금 소년이 온전하게 기댈 곳은 자신밖에 없으니 그것으로 충분하지 않은가. 약아빠진 스스로에게 혀를 찼지만 저는 원래 이런 인간이었다.

 

“나는 도피처 같은 데가 아닌데.”

 

소년을 내려다보며 시험 삼아 잔인한 말을 내던졌다. 원망스러운 얼굴로 저를 쳐다본다. 그러다가 시선을 피해버린다. 어른인 척 하는 꼬마는 이래서 귀엽다. 제법 사랑스럽지 않은가. 절박하게 쳐다보는 저 시선이 좋다. 저 눈에 자신만을 담고, 기대어 왔으면 좋겠다.

 

“몸만 이라면 상관없고.”

 

이제는 울 것 같은 표정이다. 이런 걸 원한 게 아닐 테지. 알고 있다. 그러나 더 괴롭히고 싶어진다. 이쪽은 여유가 넘치니 한계까지 몰아가 사정없이 일그러지는 꼬마의 얼굴이 보고 싶다.

 

그러나 소년은 다시 아무렇지 않다는 얼굴로 저를 보며 웃었다.

 

“저질.”

 

 

**

 

 

웃기다면 웃겼고, 잔인하다면 잔인하다고 생각했다. 마음도 없으면서 저를 흔드는 소년의 행태는 웃기기도 했고, 저에게 있어선 잔인하기도 했다. 다 알고 있는 주제에 모르는 척 딴청을 피우는 모양새가 참으로 얄밉다. 그러나 이쪽에서 거칠게 구는 것은 또 성미에 맞지 않아 아무 말도 안하고 있으니 영악하게도 그 점을 이용해 온다. 하여튼 요즘 애들이란.

 

“파르페 더 시켜줘요?”

“딸기 파르페로.”

 

소년이 종업원을 불러 세워 파르페를 하나 더 주문했다. 오늘은 마요네즈의 지갑을 털어 왔으니 더 먹고 싶으면 얼마든지 말하라며 선심 쓰듯 말한다. 그새 마요네즈 귀신과 다시 편해지기라도 했는지 평소처럼 귀여운 낯짝을 하고선 기분 좋게 웃고 있다.

 

저보다 한참이나 어린 녀석에게 이것저것 많이도 얻어먹고 다녔다. 당연하다는 듯, 소년과 어울려주면 자연스럽게 돈은 소년이 쓰고 있었다. 하긴 이쪽은 돈도 없는 개털에 백수 비슷한 사정을 하고 있으니 벼룩의 간을 빼먹는다고 생각을 한 것인지, 저가 계산이라도 할라치면 어느새 소년은 선수를 쳐서 항상 자신이 특별히 쏘는 거라고 웃으면서 말하곤 했다. 그 모습이 어른인 척 애를 쓰는 것 같아 우스워져서 그러려니 하고 기분 좋게 받아들였다. 신경써주지 않아도 되는 부분은 신경 쓰면서 신경을 써야 할 부분은 모르는 척 해 버리는 게 영락없는 어린애면서, 어른인 척 부단히도 애를 쓰는 소년이 참 귀엽게 느껴진다.

 

“뭘 그렇게 봐요?”

“귀여워서.”

“남자한테 그런 소릴 들으니 기분이 썩 좋지만은 않네요.”

“나도 남자한테 이런 소릴 해서 기분이 썩 좋지만은 않거든?”

 

소년이 눈을 가늘게 뜨더니 밉살맞은 목소리로 말했다.

 

“몸만 이라면, 이라고 말했던 건 어디 사는 누구더라?”

“아? 뭐라 굽쇼? 잘 안 들립니다만?”

 

능청스럽게 귀를 후비며 딴청을 피웠다. 대수롭지 않게 여기고 돌아갔나 싶었는데, 그게 아니었나 보다. 저를 쉽게 봤다고 생각하는 것일까. 이제 보니 심통이 나서 뚱한 얼굴을 하고 있었는데 왜 이제야 눈치를 챈 걸까. 이렇게까지 눈치가 없진 않았는데.

 

“....허투루 한 말은 아니니까 내키면 언제든지 말만해.”

“형씨는 참 이상하단 말이에요.”

“뭐가?”

“아무것도 관심 없는 척 하면서 뒤에선 신경써주고. 그거 좀 손해잖아요.”

“뭐... 손해 일지 아닐지는 가봐야 아는거고.”

 

여전히 심통이 난 얼굴을 하고 있는 소년은 흥미가 떨어졌는지 자리에서 일어섰다. 물끄러미 저를 쳐다보자 예의 그 산뜻한 미소를 지었다.

 

“그럼 다음엔 형씨한테 안기러 갈게요. 괜찮죠?”

 

해맑게 웃는 소년의 얼굴을 보자 살심이 치솟는다. 하지만 동시에 웃음이 나왔다. 영악하기 그지없는 말만 해대는 소년이었지만 오히려 그런 모습이 좋다. 언제든지 자신을 위해서라면 저를 이용하겠다는 뻔뻔한 말에 가슴이 뛴다. 그래, 얼마든지 이용해줘. 소년이라면 얼마든지 이용당해 줄 수 있다. 긴토키는 습관적으로 뒤통수를 긁으며 소년의 말에 대답했다.

 

“얼마든지.”

 

 

 

 

1.요즘 애들

2.요즘 어른

 

 

 


어른들은 참 비겁하다. 뻔히 눈에 보이는 사실들을 이리 둘러대고 저리 둘러대서 결국 어린애는 몰라도 돼, 라고 가차 없이 벽을 만든다. 굳이 그렇게까지 하지 않아도 이미 그 속이 훤히 다 들어다 보이는데도 어른의 자존심이라는 것일까. 절대로 내색하려들지 않는다.

 

지금 자신의 앞에 앉은 사내도 다를 것이 없었다. 다른 사람보다 더 했으면 더 했지 한 번도 자신의 앞에서 솔직하게 속내를 털어 놓은 적이 없었다. 그러나 막연히 비겁하다, 라고 여길라치면 묘한데서 올곧게 나와 감히 그런 생각을 하지 못하게 한다. 그래서 이 남자는 참 비겁하다고, 소년은 생각했다.

 

직장상사도 그렇고 이 동태눈깔을 한 남자도 그렇고, 하나같이 다 바보 같은 사내들이었다. 그래서 심통이 났다. 제 누나를 끔찍이도 마음에 품었던 직장 상사는 누이가 죽자 저를 누이 대하듯 아주 안절부절, 난리도 아니었다. 얼굴을 제외하면 닮은 구석이라고는 한 군데도 없는 남매였건만 사람이 민망할 정도로 애달게 쳐다보는 것이 짜증이 나 답지 않게 삐딱선을 타고 상사를 대했다. 그러자 그게 또 저 딴엔 걱정이 되었는지 과보호가 도를 넘어서, 결국은 이쪽에서 먼저 버럭 화를 내고 둔영을 뛰쳐나와 버렸다.

 

생각 없이 걷다보니 해결사 사무실 앞이었다. 마침 동태눈깔에 의욕 없는 얼굴을 한 남자가 하품을 하며 2층 난간에 기대어 저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남자의 얼굴을 보자마자 뒤도 생각하지 않고 자연스럽게 해결사 사무실로 올라갔다.

 

제집인 냥 익숙하게 사무실 안으로 들어와 엉덩이를 붙이고 앉자 자신의 뻔뻔함에 기가 차는지 남자는 허, 하고 어이없어하며 웃었다. 대놓고 자신을 귀찮아 해주는 그 솔직함이 좋아 매번 일이 있을 때마다 이 사내를 찾지만, 그렇다고 딱히 그런 이유 때문에 이 사내를 찾는 것은 아니었다.

 

“어미 잃은 개새끼 보듯 보잖아요. 짜증나게.”

 

대뜸 속에 있는 말을 꺼내자 남자는 무슨 소리냐는 듯 길게 누워 한 팔로 머리를 괴고 멀뚱히 저를 쳐다보았다. 실수했다 싶어 황급히 입을 다물자 남자가 피식거리며 웃는다. 너무 속을 보이는 게 아니었는데. 항상 이런 식이다. 이 남자 앞에서는 이상하게 경계심이 무너져버린다. 속에서 앓는 일이 있으면 매번 이 남자를 찾아오는 이유는 바로 이런 이유 때문일지도 모른다. 저도 모르게 풀어져버리는 저 남자의 분위기는 어쩔 때는 사람을 설레게 했다가 어쩔 때는 사람을 숨 막히게 했다가, 뒤죽박죽 엉망이었지만 세상의 단 하나 밖에 없는 구원 같아 제 쪽에서 스스로 목을 매게 된다.

 

“가 볼게요.”

“누가 널 그렇게 봤는지 이야기 안 해 줄 거야?”

“알 거 없어요.”

 

능글맞게 웃는 사내의 표정이 싫어 재빨리 일어났다. 여기서 더 미적거렸다가는 속을 다 내보이게 될까 두려워 사내를 쳐다보지도 못하고 황급히 발을 옮겼다. 그러나 미련이 남아 조심스럽게 사내를 쳐다보고 말했다.

 

“다음에 또 올게요.”

 

 

**

 

 

항상 세상일에 관심이 없어 보이는 사내에게, 저라고 해서 예외는 아니었다. 그는 모든 이에게 똑같이 관심이 없었다. 어쩌다 얽히는 일에나 겨우 관심을 둘까, 철저하게 그는 일정 선을 유지하며 세상에서 동 떨어진 냥 멀리서 관망하듯 사람을 대하곤 했다.

 

그런 사내의 태도에 약이 올라 부단히도 속을 긁어댔다. 속을 긁어댈 때마다 짜증난다는 얼굴을 하고 있으면서도 이쪽을 보고 묘하게 웃어줄 때가 있어, 그것이 좋아 그렇게 치근댔었나 보다. 그리고 그 묘한 웃음에서 저를 대하는 사내의 감정을 알 것 같기도 했고 모를 것 같기도 했다.

 

“히지카타씨가 오늘 뭐라고 했는지 알아요?”

 

상사의 이야기가 나오자 대번에 흥미 없다는 얼굴을 하고는 하품을 해댄다. 입가에 묻은 케이크 크림을 혀로 쓸어가는 모습이 다 큰 사내에게 어울리지 않아 웃음이 나왔다. 무슨 말이든 해보라는듯한 얼굴로 지루하다는 의사표현을 온 몸으로 하고 있는 사내의 얼굴이 일그러지는 것이 보고 싶어 되지도 않는 거짓말을 한 것은, 정말로 100% 충동이었다.

 

“글쎄 나를 좋아한데요. 하핫, 이 사람 진짜 미친 거 맞죠?”

“아아, 그러셨어요.”

“어라, 뭐야? 형씨, 재미없어요?”

“빤히 보이는 사실을 이제 와서 새삼.”

“...그랬어요?”

 

아무렇게나 대답하는 모양새를 보니 아무래도 상관없다는 모양이었다. 보통 사내가 사내에게 고백을 했다는 말을 들으면 혐오라던가, 경악이라던가 하는 반응이 나오는 게 평범한 반응일진데 이 사내는 그러든가 말든가 일말의 관심도 없다는 얼굴이다. 그 태도에 배알이 꼴려 저도 모르게 입을 댓 발 내밀고 있자 사내는 저를 힐긋 쳐다보더니 능글맞게 웃으면서 농담을 걸어왔다.

 

“마요네즈 귀신이 자기 애라도 낳아 달래냐?”

“...뭡니까, 그 저질스런 예측은.”

 

어처구니가 없는 농담에 기가 막혀 사내의 얼굴을 빤히 쳐다보자 뭘 새삼스럽게 고민하고 있냐는 표정이었다. 이래서 이 남자는 바보 같다. 다 아는 척을 해대지만 결국 어린애가 한 거짓말도 구분하지 못하는 멍청한 어른이다. 저를 좀 봐달라고 이렇게까지 구는데 남자는 시종일관 헛다리만 짚으며 사람을 열 받게 만든다. 더 짜증이 나는 것은 저렇게 다 알고 있다는 얼굴을 하고 어린애취급을 해대는 태도이다.

 

“아는 사람이 왜이래요.”

 

퉁명스럽게 말을 내뱉자 남자는 웃으면서 머리를 긁어댔다. 퍽이나 이쪽의 사정이 재미있어 보였는지 구성진 드라마를 한 편 보는듯한 표정이다. 그 여유가 넘치는 행동에 점점 더 골이 났다. 그래, 어디 끝까지 한 번 속아봐라, 하는 심정으로 빤히 남자를 쳐다보자 그는 피식거리며 본심을 말했다.

 

“나는 도피처 같은 데가 아닌데.”

 

아마도 이 남자가 처음으로 자신에게 내뱉은 솔직한 어른의 마음이었을지도 모른다. 귀찮다는 말이겠지. 저 말은, 너 같은 어린애를 이쪽에서 신경 쓸 만큼 여유롭지 않다는 일종의 방어막 같은 것이었다. 충분히 이렇게 나올 것을 예상하고 있었지만 남자의 비겁함에 절로 속이 꼬여 시선을 마주하지 못하고 피해버렸다. 그러자 남자가 아예 쐐기를 박아버렸다.

 

“몸만 이라면 상관없고.”

 

그 말에 우습게도 서러워져 눈물이 나올 것 같았다. 사춘기 소녀 같은 반응을 보이면 더 비참해질까봐 가까스로 웃으며 남자를 바라보았다. 그래도 상관없다면 한 번 놀아주겠다는 얼굴을 하고 있었다.

 

얼굴은 웃고 있었지만 속내까지 속이진 못하고 결국 진짜로 하고 싶었던 말을 하고 말았다.

 

“저질.”

 

 

**

 

 

얼마 전에 화를 내고 뛰쳐나간 것이 효과가 있었던 모양인지 마요네즈를 사랑하는 상관에게 하루 정도 놀고 싶다고 떼를 썼더니 예상보다 쉽게 허락을 해주었다. 기분 좋게 거리로 나와 걷고 있으니 만사가 귀찮다는 얼굴을 한 남자가 배를 긁으며 마주오고 있었다. 며칠 전의 일도 있고 해서 모른 척 해버릴까 하다가 그러기엔 이 기회가 너무 아까워 웃으면서 남자를 불러 세웠다. 그리고 오늘은 기분이 좋으니 자신이 파르페를 쏘겠다고 하자 남자는 저를 귀엽다는 듯 쳐다보며 사양하지 않고 뒤를 따라왔다.

 

“파르페 더 시켜줘요?”

“딸기 파르페로.”

 

별 이야기는 나누지 않았다. 시답잖은 농담을 주고받으며 서로 퍽이나 친한 척을 해댔다는 것 말고는 아무런 진전이 없었다.

 

“뭘 그렇게 봐요?”

“귀여워서.”

“남자한테 그런 소릴 들으니 기분이 썩 좋지만은 않네요.”

“나도 남자한테 이런 소릴 해서 기분이 썩 좋지만은 않거든?”

 

저를 보고 귀엽다고 말하는 얼굴에서 자주 볼 수 없었던 그 묘한 미소를 발견하자 괜히 또 가슴이 떨려 퉁명스럽게 태클을 걸었다. 그랬더니 대번에 남자도 기분 나쁘다고 대꾸했다. 그러나 기분 나쁘다고 말하는 남자의 얼굴은 별로 불쾌해 보이지 않았다. 오히려 저를 보며 능글맞게 웃고 있는 모양새는 기분이 좋다는 쪽에 가까웠다. 언제나 여유가 넘치는 얼굴이 꼴 보기 싫어 며칠 동안 이를 갈았던 화제를 저도 모르게 남자에게 내던져버렸다.

 

“몸만 이라면, 이라고 말했던 건 어디 사는 누구더라?”

“아? 뭐라 굽쇼? 잘 안 들립니다만?”

 

예상했던 대로 뻔뻔스럽게 귀를 후비며 모르쇠로 일관하는 남자의 태도가 참으로 저다워서 별다른 말도 떠오르지 않았다. 남자와 입씨름 하고 싶지 않아 한 쪽 팔로 턱을 괴고 시선을 창밖으로 돌리자 예상외로 그가 먼저 말을 걸어왔다.

 

“....허투루 한 말은 아니니까 내키면 언제든지 말만해.”

 

일종의 방어막 같은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그게 아니었나 보다. 여전히 남자는 자신에게 본심을 말하지 않았던 것이었다. 이래서 어른은 비겁하다. 생각해보니 그때 남자가 보였던 미소는 저를 비웃는다기보다는 흥미 있다는, 일종의 호기심 쪽에 더 가까운 미소였던 것 같기도 하다.

 

“형씨는 참 이상하단 말이에요.”

“뭐가?”

“아무것도 관심 없는 척 하면서 뒤에선 신경써주고. 그거 좀 손해잖아요.”

“뭐... 손해 일지 아닐지는 가봐야 아는거고.”

 

뭐가 되었든 여전히 남자는 제 상관이 저를 좋아한다고 믿는 눈치였다. 어쩜 이렇게 멍청할까. 이 사내 눈에 좀 들어보겠다고 이렇게까지 발버둥을 치는데 남자는 언제나 그렇듯 어쩌다 얽힌 일에만 겨우 관심을 쏟는다. 그래, 어디 한 번 끝까지 속아봐라.

 

“그럼 다음엔 형씨한테 안기러 갈게요. 괜찮죠?”

 

제법 도발다운 도발을 하려고 일부러 남창 같은 말을 지껄였다. 그러자 남자가 재미있다는 듯 웃었다. 그리고 흔쾌히 대답했다.

 

“얼마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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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전은 어떻게 해야하나 심하게 고민중입니다.

일단 본편부터 올립니다.

오타 있을겁니다. ctrl+c/ctrl+v 의 폐혜이니 그냥 모른척(...) 해주세요.

나중에 확인하고 고칠걸요?........아마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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