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념(邪念)



ㅈ.희삼


04.

올 겨울 들어 유난히 날이 추웠다. 소년은 코트자락을 여미며 몸을 떨었다. 코트 주머니에 손을 넣을 법도 했지만 소년은 그러지 않았다. 적어도 한 손은 넣을 수 없다고 해야 옳았다. 넣을 수 없는 손에는 백합 한 송이가 들려있었기 때문이었다.


백합의 주인은 소년의 누이였다. 소년은 을씨년스러운 분위기의 공동묘지 한 가운데서 제 누이를 찾아 두리번거렸다. 이쯤이었는데, 싶어 서성거렸지만 일렬로 늘어선 묘비들이 특색 없이 비슷비슷해 한참 주변을 서성거려야 했다. 그러다 곱게 포장된 어여쁜 안개꽃 한 줌이 놓인 묘비를 발견했다. 소년은 그 앞에 서 희미하게 웃으며 제 누이에게 말을 걸었다.


오랜만에 왔네요, 누님.”


소년은 익숙한 듯 제 누이의 앞에 놓인 안개꽃 한 줌을 옆으로 밀어내며 제가 들고 온 백합 한 송이를 조심스레 내려놓았다.


그 치는 올해도 변함이 없네요. 진짜 재수 없다니까.”


소년의 말이 끝나자마자 기다렸다는 듯 겨울바람이 꽃을 흔들고 지나갔다. 안개꽃은 바람에 힘없이 흐트러졌다. 소년은 그 모양새를 보며 씁쓸하게 웃었다. 힘없는 꽃이 꼭 제 누이를 보는 것 같아 마음 한 구석이 시렸다. 그리고 안개꽃을 들고 온 그 사내의 마음 같아 더욱 침울해졌다. 매년 반복되는 일이었지만 올해는 특히나 더 그랬다.


그는 아무도 찾지 않는 을씨년스러운 에도 외곽의 공동묘지에서 그렇게 온 몸이 꽁꽁 얼어붙을 때까지 제 누이의 묘 앞에서 움직이지 않았다. 우는 것도 웃는 것도 아닌 얼굴로 한참동안이나 그렇게 서 있을 뿐이었다. 바람에 안개꽃이 다 흩어져 없어질 때까지 꼼짝도 하지 않았다. 살을 에는 바람이 춥지도 않은지 소년은 몇 시간이나, 해가 다 져서 어둠이 제 발치를 덮을 때까지 그렇게 서 있었다.

 


**



한 편 소년이 말도 없이 자리를 비운 탓에 신센구미 둔영은 발칵 뒤집어졌다. 1번대 대장이 말도 없이, 흔적도 남기지 않은 채로 부재중이 된 까닭에 일선에선 양이지사에게 당한 것이 아니냐는 둥 근거 없는 소문들이 퍼지기 시작했다.


이 멍청이가 도대체 어딜 싸돌아다니고 있는 거야?!”


거기다 과보호로는 둘째가라면 서러울 신센구미 귀신부장의 화까지 돋우고 말았다. 모르긴 몰라도 그들의 측근에 있는 사람이라면 이제 소년이 무사히 복귀를 하더라도 히지카타에게 무자비하게 깨질 것이라는 것을 어렵지 않게 예상할 수 있었다. 차라리 이렇게 된 이상 어디하나 부러져서 들어오는 게 소년에게는 더 나을지도 몰랐다. 그러는 쪽이 동정심이라도 살 수 있을 테니까.


그 와중에 불행 중 다행인 것은 눈치 빠른 1번대 부대원들은 부장의 불호령이 떨어지기 전에 재빠르게 자신들의 대장을 찾아나선지 오래였다. 에도를 벗어나지 않았다면 아마도 한두 시간 내로는 어떤 방향으로는 소식이 있을 터였다. 물론 작정하고 숨은 경우만 아니라면 말이다. 그들의 유일한 소망은 제발 자신들의 대장이 그저 농땡이가 치고 싶어 거리를 방황하며 주전부리나 입에 물고 가벼운 일탈을 즐기고 있기만을 바랄 뿐이었다. 그러나 아는 사람은 다 아는 그 날이었기에 그들은 아마도 오늘 밤이 평화롭게 만은 지나가지 않을 것이라고 은연중에 예감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 평화롭지 않은 밤이 시작되고 말았다.


부장! 오키타 대장을 찾았습니다. 그런데, 그게.......”

그 멍청이가 또 무슨 사고를 친 거야?”

그게, 지금 방에 눕혔습니다.”

요새 좀 풀어주니까 상관이 아주 만만하지? 누구 마음대로 그 자식을 방에 편하게 눕혀? 당장 이리로 끌고 와.”

, 부장. 그럴 수 있는 상황이 아닙니다.”


히지카타는 제 앞에 선 부하를 밀치며 걸음을 옮겨 소년의 방으로 향했다. 뒤에서 안절부절 못하며 따라 붙는 부하가 뭐라고 떠들어댔지만 들리지 않는 사람처럼 행동했다. 쓰러졌다, 까지 대충 듣고는 더욱 화가 치밀어 올라 입에 물고 있던 담배를 바닥에 팽개쳤다.


됐으니까 따라오지 마. 그 놈은 내가 알아서 할 테니까.”

, 그러니까 부장. 오키타 대장이......”

가 보라고.”


단호하게 할 말을 가로막는 히지카타 때문에 부하는 꿀 먹은 벙어리가 된 것처럼 입을 다물었다. 히지카타는 난처한 표정의 부하가 완전히 조용해진 뒤에 다시 걸음을 옮겼다. 부하는 그런 히지카타의 모습을 보며 이젠 저도 모르겠다고 중얼거리며 제 할 일을 찾아 나섰다. 설마 무슨 큰일이라도 나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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